가수 박화요비 프로필 나이 본명 데뷔 음악 활동 학력
박화요비
Hwayobi
본명
박미영 → 박레아
출생
1982년 2월 11일 (41세)
전라북도 군산시
국적
대한민국
본관
밀양 박씨
신체
161cm, B형
학력
오천초등학교 (졸업)
오천중학교 (졸업)
포항중앙여자고등학교 (전학)
동대전고등학교 (전학)
선정고등학교 (졸업)
동덕여자대학교 (실용음악학 / 중퇴)
장르
팝, R&B
데뷔
2000년 1집 《My All》
가족
부모님, 여동생(1985년생)
대한민국의 R&B 가수이다. 정식 데뷔 전 예명은 박노미였다가 데뷔하면서 박화요비로 바꿨다.
'화요비'라는 이름의 유래는, 여러 설이 있으나, 화요일에 이름을 지은 것에서 '화요'를 따왔고, R&B를 부르기 때문에 '비'를 붙였다는 얘기가 가장 정설. 화요비는 인터뷰에서 각자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면 좋겠다고 넌지시 말했다.
정식 활동명은 박화요비(1~4집)에서 화요비(5~8집)로 바뀌었다가 다시 박화요비로 돌아왔다.
박화요비 음악 특징
가창력 및 멀티 보이스 컬러
화요비의 음악적인 강점을 고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고음도 고음이지만 화요비가 다른 아티스트들과 차별화될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창법으로 다양한 음색을 구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어느 정도냐면, 이제껏 내왔던 정규 앨범은 물론 미니 앨범까지 각 앨범마다 전부 창법과 음색이 다를 정도로 20년이 넘는 가수 생활에서 다양한 음색을 선보여 왔다. 때로는 자신의 음악적 지향에 맞추어서, 앨범 컨셉에 맞추어서 팔색조 같은 목소리의 매력을 자랑한다. 박화요비에 대해 많이 안다고 하는 올드 팬들은 목소리만 들어도 몇 년도에 불렀던 노래인지를 짐작하기도 한다.
그녀는 EP 앨범 '반쪽' 활동 당시 인터뷰에서 '가수가 이 노래 저 노래 똑같이 부르면 곡 느낌이 살지 않는다'고 멀티 보이스 컬러의 힘을 강조하기도 했고, 5집 활동 당시 인터뷰에서는 창법이 바뀐 것에 대해서 자신의 꿈은 '멀티 보이스 컬러'라고 밝힌 바 있다.
데뷔 초기의 맑은 음색을 필두로 한 테크닉 중심의 음악에서부터 점점 감성과 소울이 짙어졌다고 하는 5집까지의 가창은 그녀의 목 상태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성공적인 성대 수술 이후의 가창은 '가사와 감성이 중심적인' 음악을 하고 싶다는 그녀의 의향을 확실히 따라가고 있다. 6집에서의 음색은 오히려 5집보다 부드럽지만, 7집부터는 현재의 목소리로 노선을 전환, 현재는 아무도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할 수 없는 독보적인 가수가 되었다. 현재 팬들도 거의 모든 앨범을 명반으로 추천하고 있고, 간간이 내는 싱글이나 OST 역시도 팬들의 호감이 굉장히 높은 편.
싱어송라이터
데뷔 앨범 때부터 작사와 작곡에 일부 참여했다. 앨범의 숫자가 더해갈수록 참여도도 높아지고, 아예 앨범을 자체 제작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2010년 7집을 기점으로 출연한 방송에서는 '싱어송라이터 화요비'로 MC의 소개 멘트가 바뀔 정도.
발매된 모든 앨범에 작사를 참여했다. 본인의 앨범에 수록된 130곡 중 64곡을 작사했다. 무려 48%. 작곡도 37곡으로 29%. (2020년 6월 기준). 즉, 전체의 절반(1/2)은 작사하고, 1/3은 작곡한다는 얘기. 단순히, 보컬리스트가 아니라 '싱어송라이터'라 불릴만 하다.
싱어송라이터의 본격적인 시작의 앨범인 7집 앨범의 성공 후,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곡을 쓸 때는, 느낌이 오는 날 짧은 시간에 완성하는 편이고 '오늘은 날이 아니다' 싶으면 억지로 쓰지 않는다고 한다.
또 타 가수의 노래를 작사, 작곡하기도 하며 대표곡은 윤하의 '오늘 헤어졌어요' 였다.
2013년 10월 31일, 남성 솔로 가수 '신재'의 타이틀곡 '이 노래 듣고 니가 돌아왔으면'에 작사, 작곡, 코러스까지 참여하여 작곡까지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절친인 거미의 2014년 6월 10일 자정 공개된 새 미니 앨범에 휘성과 함께 자작곡을 선물했다.
R&B 디바로서의 이미지
그녀의 연이은 예능 출연이 가수로서의 이미지를 변화시켰다는 목소리도 일부 있었다. 실제로 화요비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 대해 노래 잘하는 가수가 아니라 웃기는 사람이라는 응답이 상당히 는 것을 보면 예능의 파급력, 나아가 미디어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다만 그녀가 예능을 위한 예능을 찍은 것이 아니라, 가수이기 전에 연예인이자 방송인으로서 예능에 출연한 점, 본인 스스로가 인터뷰에서 밝혔듯 예능 활동에 따른 이미지 변화에 긍정적인 생각을 품고 있는 등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무엇보다 음원 성적으로 연결될 만한 예능 출연은 당시에나 향후 음악 활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간이었다.
특별히 논란이라고 부풀려 말할 만큼은 아니었지만, '디바 이미지'가 흔들릴 만큼의 행보는 '스타 화보'에서 다시 드러났다. 두 차례에 걸쳐 '스타 화보'를 찍어 디지털 판매를 한 이력이 있는데, 노출도가 '스타 화보다워서' 대중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이전의 그녀는 라이브 무대든 어디서든 신체 노출이 거의 없었고, 가수로서의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대중의 주목은 클 수밖에 없었다. 화보 자체도 팬이든 아니든 본 사람은 입을 벌릴 만한 수위였기도 했다.
후술할 ‘가창력 논란’과 더불어 예능 출연, 스타 화보 촬영은 R&B 디바로서의 화요비의 이미지를 바꾸게 한 요인이 되었다며 아직까지 걱정을 하는 팬이 남아있는 편이다. 정작 본인은 예능 출연이든 화보 촬영이든 즐거운 마음으로 했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기에, 팬으로서 그녀의 다짐과 사상을 믿어주는 편이 여러모로 좋을 것 같다.
성대 낭종과 음악적 변화
정규 6집 앨범 녹음 중, 성대 종양 진단을 받아 성대 수술을 받고 잠시 동안 공백기를 가졌다. 그 이후로 그녀의 가창 스타일은 최대의 변화를 겪는다. 대체로 '성대 수술이 잘못되어서 기량이 떨어지고 음색이 부드럽고 가는 미성(1~5집)에서 굵고 소울풀한 탁성(7집~현재)으로 변했다'라고 여겨진다.
다만, 화요비는 흔한 성대결절이 아니라 유착성 성대낭종에 가까워 혹을 제거했기 때문에 음색이 변했을 수 있으나, 수술 이후 화요비의 음색은 기존의 색깔과 달리 더 맑고 얇게 변화했다. 그 이후 점점 소울풀해지고 굵어지는 음색의 변화는 본인의 음악적 지향성의 변화에 의한 것이었다.
또 화요비의 실력을 성대 수술로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예전부터 화요비는 컨디션에 영향을 많이 받는 가수였고, 박자 타는 것이 독특해 정박을 중시하는 한국 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날 수 있다.
성대 수술 후인 2008년도 콘서트에서는 데뷔 초반의 음색으로 '어떤가요', '그런 일은' 등 성대 수술 전의 스타일을 완벽히 재현했다.
2011년 휘트니 휴스턴의 'run to you', 'why does it hurt so bad'을 대학 축제와 합동 콘서트에서 완벽히 소화.
2011년 유희열의 스케치북 출연 당시 변화된 창법으로 '어떤가요'를 불렀지만, 최고음 부분에서는 성대 수술 전의 음색이 짙게 묻어 나왔다.
자신의 의향을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한다는 드라마 OST에서는 성대 수술 전의 음색을 풍기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으로 '마취'.
성대결절 이후에도 화요비가 행사장에서 즐겨 선택하는 곡 중 하나가 그 어렵다는 'run to you'이다.
2014년 연말 전날 실신해서 목이 다 쉬어 화요비의 강점인 간드러지는 음색이 없는 상태에서 가성과 진성만으로 20곡을 소화했다.
이에 관해 화요비 본인은 그때의 음색과 스타일은 못 내는 것이 아니라 안 내는 것이라고 13년 4월 2일 공언을 했다. 앞으로 앨범 에서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2015년 기준 과거 창법으로 부른 것 같은 노래를 들어봐도 100% 옛날 2, 3집 시절의 목소리가 나진 않는다. 앨범을 낼 때마다, 노래를 바꿀 때마다 음색이 확연히 달라지는 후술할 화요비의 특성과 지나온 세월이 긴 만큼 1~2집 때의 음색을 다시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일 듯하다.
그럼에도 특정 장르의 음악적인 기량만큼은 현재가 최고라는 인식이 있는데, 다음은 그 사례들이다.
* 2004년 문명진과 부른 'slow jam'과 2013년 부른 'slow jam'을 비교해보면 어느 쪽이 더 파워풀하고 흑인 음악에 적합한지 잘 알 수 있다.
* 데뷔 초반과 2013년의 '그런 일은'을 비교해보면 데뷔 초반 음색이 발라드에 더 적합하긴 하지만, 최고음 부분은 13년 쪽도 손색 없는 고음인 데다 성량은 더 크고 발성은 더 탄탄하다.
데뷔 초반과 2011년의 'why dose it hurt so bad'를 비교해보면 두 커버 모두 훌륭하나 2011년의 영상이 좀 더 소울풀하다는 의견도 많다.
여담으로, 저음과 고음 모두 특화 되어있다. 저음은 0옥타브 시, 믹스 고음은 4옥타브 레 최근 불후의 명곡에서도 라이브로 3옥타브 솔#을 냈다! 최근 정규 8집에서도 3옥타브 솔이 등장한다.
박화요비 커리어
대학 시절,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지만 클래식을 접고 실용음악과로 진로를 바꾸었다. 1집 앨범이 나오던 시절부터 집안의 반대도 어느 정도 누그러져갔다고. 그녀는 만약 가수가 되지 않았다면 피아노를 치고 있을 거라고 말했다.
포항MBC 라디오 '별밤 뽐내기' 연말 결선에서 이희진의 '용서'를 불러 대상을 타고 데뷔하게 되었다. 데뷔 당시에는 박화요비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었지만, 일본 진출을 위해 예명을 화요비로 바꿨다. 18살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독보적인 가창력과 성숙한 목소리로 주목받았으며, 박효신 등과 함께 국내 R&B 아티스트의 대표주자였다. 당시는 박정현, 박화요비, 박효신의 이른바 '3박' 시절. 당시 KBS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출연해 환상적인 라이브 무대를 선보였고, 같은 소속사였던 박효신과의 듀엣곡 라이브도 선보였다. 본인의 노래뿐만 아니라 머라이어 캐리 등의 팝을 굉장한 실력으로 소화했다. 화요비의 유명한 팝송 소화 능력은 이미 데뷔 때부터 증명된 셈.
초기 창법은 머라이어 캐리와 매우 흡사했는데, 그녀의 데뷔 앨범인 1집 앨범 제목도 머라이어 캐리 5집 후속곡 제목인 <My All>을 그대로 가져왔다. 머라이어 캐리와 창법이 비슷한 것에서 착안하여, 그만큼 파워풀한 실력파 가수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마케팅의 일환이었다. 타이틀곡 Lie 뿐만 아니라 전곡을 타이틀곡으로 선정해도 될 만큼의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한다. 1집을 내고 타이틀 곡 <Lie>의 인기에 힘입어 두 차례의 콘서트를 열고 인기와 실력에 힘입어 창작 뮤지컬에 출연하기도 하는 등 신인으로서는 보기 힘든 업적을 남겼었다.
2집 <Nineteen Plus One>을 내고 자신이 작사한 타이틀 곡 <눈물>로 활동했다. 판매량은 1집에 비해 다소 부진하였지만 환상적인 가창력과 라이브 무대로 주목받았다.
이정봉 원곡의 <어떤가요>를 리메이크한 동명의 타이틀곡으로 한 3집 <Because I Love You> 활동은 '가창력 좋은 가수, 박화요비' 이미지의 정점을 찍었고 판매량 자체도 좋았다. 후속곡인 <끝이 보일 때쯤> 뿐만 아니라 수록곡 <사랑은>도 라이브 무대를 많이 가지는 등 다른 수록곡의 인기도 좋았다.
이후로는 4집 <Soul saver>의 타이틀곡 <당신과의 키스를 세어보아요>, 이하 당키세 활동을 기점으로, 아래 항목에서 후술할 예능 활동과 더불어 대중적인 인기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당키세는 화요비의 앨범 타이틀곡 중에서도 1집의 <그런 일은>과 더불어 굉장히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곡으로 팬들 사이에서도 역시 인지도가 높다. 원곡은 일본의 가수 코야나기 유키의 것인데, 원곡의 락 요소를 발라드적 요소로 편곡하고 가사도 일부 바꾼 리메이크곡. SBS '김윤아의 뮤직웨이브'에서 두 가수가 한 무대를 가지기도 했다.
이후 일본 활동, 일부 팬들 사이에서 화요비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는 5집과 리메이크 앨범을 거친다.
2007년, 몇년 전부터 앓아오던 성대낭종이 악화되어 수술을 받았다. 수술 회복 이후 2008년 초 6집 활동을 시작하고, 예능 우리 결혼했어요로 큰 인기를 얻었다. 특유의 환희와의 앙상블은 코믹 그 자체. 자세한 사항은 후술할 문서 참조.
예능의 파급력은 음원에도 미쳐, 그때를 즈음하여 냈던 음원인 <반쪽>, <남자는 모른다>, <마취> 모두 음원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냈고, 정규 7집 타이틀 곡 <BYE BYE BYE>는 당시의 음원 강자였던 원더걸스의 <2DT>를 위협하는 성적을 냈다.
2013년 9월 9일, 서울종합예술학교의 실용음악예술학부 보컬과 겸임교수로 임용됐다.
새 미니 앨범 <820211>의 선공개곡인 <마주보기>와 함께 다큐 에세이를 공개했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화요비와 함께 출연한 김성주가 나레이션을 맡았다.
2014년 12월 30일, 앨범 발매 전 연말공연 중 실신하여 병원에 후송되어 콘서트가 도중 취소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전액 환불 조치를 해주고, 소속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화요비가 무릎을 꿇면서 찍은 사과 동영상을 올렸다. 다음날 공연에는 차질 없이 진행하여 잘 마무리 하였다.
2015년 1월 15일, EP 앨범 <820211>을 발매하여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2018년, 이름을 다시 박화요비로 변경하여 신보로 컴백 예정.
2020년 3월 기준으로 예명을 박화요비로 바꾼 이후 공식적인 소식은 없고 가끔식 행사소식만 들을 수 있었고 그나마 최근에는 본인이 팬톡방, 팬카페등에서 나타나 근황을 알 수 있었다.
2021년 1월 27일 싱글 앨범 <바람 같은 그대를>을 음원 사이트와 유튜브를 통해 공개했다. 박화요비로 다시 바꾼 이후 첫 앨범이다.
2021년 11월 25일 싱글 <놀>을 공개했다. 왈츠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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