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국환 고향 나이 학력 이력 재산 프로필 - 성남시장 출마
배국환 고향 나이 학력 이력 재산 프로필 - 성남시장 출마
배국환
裵國煥|Bae Gook-hwan
출생
1956년 10월 16일 (65세)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수양리 동령마을
학력
경복고등학교 (졸업)
성균관대학교 경상대학 (경영학 / 학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 석사)
위스콘신 대학교 대학원 (공공정책학 / 석사)
가족
부인 박정기, 슬하 1남 1녀
본관
경주 배씨
경력
제22회 행정고시 합격
기획예산처 건설교통예산과장
행정자치부 지방재정국장
기획예산처 공공혁신본부장
기획예산처 정책홍보관리실장
기획예산처 재정전략실장
기획재정부 제2차관
감사원 감사위원
인천광역시 경제부시장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장
현대아산 대표이사 사장
삼표그룹 부회장
대한민국의 전직 기업인 및 관료 출신 정치인으로 이명박 정부 시절 기획재정부 제2차관을 지냈다.
22회 행정고시에 합격 후 상공부를 시작으로 기획예산처, 행정자치부, 기획재정부를 거치며 예산통, 기획통으로 공직에서 근무했으며 이명박 정부 시절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에 임명되어 근무했다. 이후 감사원 감사위원으로 이동했다가 공직을 마친 후 현대아산 대표이사 사장, 삼표그룹 부회장 등을 지냈다. 2022년 5월에 더불어민주당 성남시장 후보로 전략공천을 받아 8회 지방선거에 출마했다.
배국환 성장 과정
1956년 전라남도 강진에서 출생했다. 출생 후 얼마 안 돼서 부모님들이 목포로 이주했는데 집안 형편은 계속 어려웠다. 목포에서 초등학교까지 다녔는데. 어릴 때 내내 너무 못 먹고 자란데다 몸도 약해서 기운이 없어 공부하기가 힘들었다고. 어릴 적에는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려 엎드리면 코피가 줄줄 나왔는데 이런 증세가 한참 지속되어 매우 힘들었다. 체구는 항상 마르고 작았다. 친구들이 뼈다귀라고 부르며 놀릴 정도로 작고 야윈 아이었다고 한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 식구도 많아서 가지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은 꿈도 못 꾸는 환경이었지만 공부는 항상 잘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에서 오신 친척이 배국환이 공부하는 것을 보고 부모님께 ‘이런 애는 서울로 데려가서 공부를 시키라’ 고 권유해서 서울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당시 배국환 부모님의 형편에서 아이를 서울로 유학 보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동생들도 많았기에 더욱 부담되는 상황. 그러나 부모님이 ‘우리가 더 못사는 한 있어도 너는 공부시킨다’ 고 하며 배국환을 그 친척 어른 손에 딸려 서울로 올려보냈다. 서울에 올라갔던 때가 초 6학년 12월 겨울. 겨울방학을 하자마자 졸업식도 못 가고 바로 서울로 갔다.
배국환은 서울에 상경해서 친척집에 좀 있었는데 그 집도 형편이 좋은 집은 아니었다. 처음 살았던 친척집이 옥수동에 있었다. 지금은 옥수동에 좋은 집이 많지만 당시 1960년대 초반의 서울에서 옥수동은 오지중의 오지였다. 친척집에 잠시 지내다가 중학교는 청운중학교로 진학했다. 친척집을 알아봤지만 마땅한 데가 없어서 할 수 없이 학교 근처에서 혼자 하숙을 하게 되었다. 그 때 하숙비가 한 달에 칠천원이었다고. 당시 배국환 가정의 한 달 쌀값이 9천원이었으니 그 앞으로 들어가는 하숙비가 절대 적은 돈이 아니었고 집에 큰 부담이었다. 집에서는 하숙비와 기본적인 생활비만 지원할 뿐 다른 비용을 줄 수 없어서 수학여행이나 소풍 비용은 아예 못 내는 형편이었다고 한다.
배국환은 그렇게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혼자 밥 해 먹고 학교 다니면서 서울유학생활을 했는데 그 때를 '매우 외롭고 힘들었던 시절'로 기억한다. 중학교 때 덕적도로 전교생이 하계수련회 가는데 배국환 혼자 수련회비를 낼 수가 없어서 못 갔는데 그때 서러워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그 뒤로 평생 덕적도를 못 가 보다가 60이 넘어서 인천 경제부시장으로 일할 때 업무차 덕적도를 가게 되었고 그 때 어린시절을 생각했다고.
청운동에서 하숙을 할 때, 중학교가 청운중학교라 근처에 청와대가 있었다. 그런 속에서 언젠가 자신도, 지금은 가난하고 외로운 형편이지만 언젠가는 훌륭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 나라의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기재부 공직
이후 상경하여 경복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였다.
성균관대 재학 중이던 1979년 제22회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공직세계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첫 발령 부서는 상공부였으나 곧 경제기획원으로 이동한다. 경제기획원에서 재직하며 예산실 총괄계장(4급 서기관)을 지내고 대통령비서실 국가경쟁력강화기획단에 과장으로 파견되기도 하였다.
김대중 정부인 2000년부터는 기획예산처에 근무하며 건설교통예산과장 (3급), 예산총괄과장을 지냈다. 이후 서술에서도 알 수 있지만 전두환 정부 시절 입부하여 공직생활 동안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까지 여러 정부를 거치면서 큰 부침 없이 요직에 기용된 특성을 보인다. 행시 후배로 같이 근무했던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와 비슷한 커리어 루트를 탔다.
노무현 정부인 2004년에는 고위공무원 인사교류로 행정자치부에 파견되어 2급 직위인 지방재정국장을 맡기도 하였다. 이 시기인 2004년 4월에 허성관 장관이 참석한 행정자치부 '변화와 혁신 연찬회' 에서 공직사회의 무능과 비효율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20여 페이지 분량의 보고서(관료사회 정말 변하고 있는 것인가?) 를 공개해 큰 화제가 되었다. 당시 배국환은 토론에서 '정부미(관료)와 일반미(민간) 은 맛과 가격이 다르다' 고 말문을 연 뒤 '관료들은 자신들이 민간보다 우수하다고 착각하지만 그것은 민간이 갖지 못하는 법률집행권과 정보를 갖고 독점적 위치에서 정책을 결정하기에 우수하게 보이는 것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관료사회가 무사안일에서 벗어나야 하고 결재 단계를 줄이지 않고서는 속도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고 지적했다. 당시 배국환 국장의 지적은 관료조직에서 파격적인 발언으로 주목 받으며 여러 언론에서 크게 다뤄지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 변양균 당시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이 적극 주도한 국가장기비전인 비전2030의 기획에 참여했는데 당시 함께했던 동료가 후에 문재인정부 초대 경제부총리가 되는 김동연이다. 비전2030은 성장과 복지의 동반성장을 내세운 국가장기비전으로 복지국가론을 기반으로 한 한국의 발전방향을 제시했는데 2030년까지 국민소득 4만 9천 달러, 삶의 질 세계 10위를 목표로 하고 있. 비전2030의 주요 개념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 '동반성장' 의 개념은 이후 여러 대선주자와 정부에서 정책 아젠다로 차용되기도 했다.
2006년부터는 다시 기획예산처로 돌아와 1급 공무원으로 승진하여 공공혁신본부장, 정책홍보관리실장, 재정전략실장을 연달아 맡았다.
2008년 3월 참여정부가 종료되고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때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가 합쳐져 새로 출범하는 기획재정부의 제2차관으로 영전한다. 당시 배국환의 차관 영전은 이명박 정부의 TK편중인사에 대한 여론과 정치권의 반발이 어느 정도는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명박 정부가 고소영 정권(고려대, 소망교회, 영남출신) 으로 불리며 청와대 인선과 장관 임명에 영남 편중 인사를 심하게 하는 통에 큰 비판을 받았고 적어도 차관직은 비영남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는 정부 내부의 자정 움직임도 있었다.
배국환은 2009년 2월까지 차관으로 재직하였고 이후로는 같은 차관급 보직인 감사원 감사위원으로 자리를 옮긴다. 2012년 2월까지 감사위원으로 재직하였고 이후 공직을 퇴임했다.
기업인과 정무직
공직을 퇴임하고 나서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자본시장연구원 초빙연구위원, NH농협금융지주 사외이사 등으로 지내다가 새로 인천광역시장에 당선된 유정복 시장이 경제전문가 출신 부단체장을 원하면서 인천광역시 경제부시장 자리에 러브콜을 받게 된다. 유정복 시장이 행시 후배로 같이 근무한 경험이 있어 만성적인 인천시 재정문제 해결을 위해 배국환에게 부시장직을 요청한 것이다. 뒷 이야기로는 유정복 시장의 제안을 받아들인 며칠 후에 전남지사로 당선된 이낙연 지사가 경제부지사 요청을 했다는 것. 이낙연 지사는 '당신 고향이 우리쪽인데 이쪽에서 일해야지' 하면서 권유했는데 유정복 시장과의 약속이 먼저라 전남으로 가지는 못하고 대신에 다른 인사를 전남부지사로 추천했다고 한다.
이후 인천광역시 경제부시장으로 유정복 시장의 민선6기 시정의 경제컨트롤 타워를 맡아 인천시의 만성적 재정문제 해결에 힘을 쏟아 성과를 냈다. 교부세를 받고 시의 지출 중 시급하지 않거나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등의 방식으로 재정문제를 해결했다고. 배국환은 2014년 8월부터 2015년 8월까지 인천부시장으로 근무하였고 이후 물러나 가천대학교의 초빙교수직을 맡으며 다시 야인으로 돌아갔다.
2018년 10월에는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의 이사장직을 맡았다. 그리고 2018년 12월에는 현대아산 대표이사 사장직을 맡았다. 통일부 출신이 아닌 기재부 경제통인 배국환이 현대아산 사장으로 영입된데는 공직 시절 대북교류 관련 태스크포스에서 소신있는 일처리를 한 것이 반영된 결과라고 한다. 배국환은 현대아산 사장 재직 중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대화 바람을 타고 추진되던 남북의 민간 교류 부문을 맡았는데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 때문에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않았다고. 이 때 배국환은 정부와 미국 국무부에 대북 제재를 피해갈 수 있는 금융거래 기법으로 '애스크로' 계좌를 통한 대북사업 추진을 제안했고 실제로 스티븐 비건 특사단이 이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로 인해 남북대화가 전면 중단외었고 배국환 사장도 사의를 표하게 된다.
2020년 4월 삼표그룹 부회장에 취임했다.
성남시장 후보 배국환
2022년 4월 24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 성남시장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전략공천되었다. 이대호, 박영기, 정윤, 윤창근 등 대부분의 예비후보들은 당의 결정을 받아들였지만 조신 예비후보가 강경반대를 표명하며 단식에 들어가서 내홍이 계속되게 생겼다.
이때문인지 후보 공천 이후에도 활동이 안 보이다 28일 김동연 경기도지사 후보, 김병욱 분당갑 의원과 함께 미금역 버스정류장에서 시민사정청취를 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배국환 후보는 출근길 교통통제로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윤석열 당선인을 강하게 비판하고 경기 남부권 교통문제 해결을 위해 기재부 동료인 김동연 경기도지사 후보, 분당을의 김병욱 국회의원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5월 1일 부로 페이스북을 개설하여 후보 활동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개인 페이스북을 캠프가 받아서 바꾼 티가 확 나는게 홍보 게시물 이전의 글들은 전형적인 5060 아저씨의 글에 공유글이 다인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댓글에 조신 지지 시민들의 경선 요구 댓글이 이어지고 있어 최종 후보 등록일인 5월 13일까지 소소히 시끄러울 예정이다.
5월 5일에 조신 전 예비후보가 김동연 경기지사 후보의 설득을 받아들여 10일 만에 단식을 풀면서 공천 갈등이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고 있다. 그 전에 조신 후보를 제외한 6명의 예비후보들은 정자동 파크뷰 앞에서 열린 배국환 후보의 출마선언식에 참석해 원팀 선언을 하고 지역 곳곳에 걸려있던 예비후보 현수막을 철거해 갈등을 봉합하기도 했다. 조신 후보는 5월 14일에 열린 배국환 캠프 개소식에 참석해 "선거는 구도, 인물, 바람이다. 배국환은 인물 면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는 최상의 후보" 라며 배국환 후보를 치켜세워 전략공천을 둘러싼 갈등을 일단락 하고 배국환 지지를 선언했다. 조신 후보는 이후 경기도지사 캠프에서 중책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길어진 공천 갈등으로 인해 당원 결집이 늦어지는 부분은 배국환 후보측에 부담으로 남았다.
5월 14일 야탑역 성남종합버스터미널에서 열린 배국환 캠프 개소식에는 성남시 4개 지역위원장인 김태년, 윤영찬, 김병욱 의원과 이번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후보로 나선 김병관 전 분당갑 국회의원이 참석했다. 또한 배 후보의 공직 시절 대선배인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허성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참석해 축사로 배국환 후보 지지를 호소했다. 특히 90대의 노구를 이끌고 '배국환 보러 오랜만에 외촐했다' 는 박승 전 총재의 진심어린 축사가 인상적이었다는 반응. 박승 전 총재는 "나에게 사람을 추천하라고 해도 배국환 같은 인재를 찾기 어렵다. 이 사람은 공직 그만 두고 전관으로 대우받아 편히 살 수 있었지만 계속 자기 발전을 도모하며 기업 씨이오로 성장했던 사람이다. 민주당이 사람을 잘 골랐다." 고 높이 평가했다.
본선에서는 중원구에서 4선 국회의원을 지낸 신상진 국민의힘 후보와 맞대결을 펼친다. 진보당 후보의 성남시장 출마로 0.5%~1% 이상의 진보표 분산이 예측되고, 신상진 후보가 중원구에서 기존 보수 후보에 비해 미세하게나마 선전할 여지가 있다는 점, 그리고 안철수 인수위 위원장의 출마로 인한 분당 보수 결집이 예상되기에 민주당에 썩 유리한 조건은 아니다. 늦은 공천과 조신 전 예비후보와의 갈등으로 인한 진성당원 결집이 약한 것 또한 어려운 조건. 이런 녹록치 않은 조건을 딛고 배국환 후보가 승리한다면 민주당 내에서의 입지가 매우 높아질 개연성이 크다.
신상진 의원이 16년이나 국회의원을 했음에도 지역에서 별로 한 일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중론(때문에 신인인 민주당의 윤영찬 후보에게 21대 총선에서 크게 패했다) 인데 워낙 오래 의원을 했기에 인지도만큼은 최상. 못했든 잘 했던 원도심에서는 신상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때문인지 초반 여론조사에서 신상진이 배국환을 앞서는 상황. 그런데 신상진은 공약도 거의 외계어 수준이고 일정도 거의 공개하지 않으면서 매우 조용한 행보를 하고 있다. 초반 추세로만 가면 당선이 무난하다고 판단하는 듯. 대신 안철수와 김은혜와의 동반 일정은 꼬박꼬박 공개하고 있다.
그래서 배국환 후보 측은 선거전의 컨셉을 <경제전문가 배국환 VS 4선 무능 신상진> 으로 잡고 있는 듯 하다. 다만 뒤늦게 후보자로 등장했기에 낮은 인지도를 극복하는 것이 큰 과제. 반면 신상진은 수정구와 중원구 등 원도심에서의 높은 인지도(일은 한 게 없지만 알기는 다 아는 상황) 와 안철수, 김은혜와의 동반 선거운동으로 얻는 이득이 커 인지도가 약한 배국환 후보에게 불리한 상황. 배 후보는 지역에서 정치활동이 전무했던 신인인데다 조신 전 예비후보 지지 그룹 및 성남시 열성당원들의 마음을 잡아야 하는 상황. 기재부 출신인 장점을 살려 인물론, 정책적, 내용적 차별화를 통해 인지도와 지지도를 동시에 끌어올려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배국환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인지도와 선거구도를 극복하기 위해 김동연, 김병관과 3각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문재인정부 초대 경제부총리 김동연, 웹젠 창업가 출신의 청년 국회의원 김병관, 그리고 기재부 차관 출신인 자신의 연합이 경기도와 성남, 분당, 판교의 발전을 더 크게 견인할 수 있다는 것.
선거 내내 여론조사에서는 접전 혹은 박빙 열세 양상으로 나왔으나 결국 신상진에게 큰 차이로 패했다. 첫 선거에서 43%를 넘긴 것은 상당한 선전이었으나 제2의 강남 3구인 분당의 아성을 넘진 못했다. 심지어 수정구와 중원구에서도 각각 3.6%p, 5.5%p 차이로 졌다. 분당구에서는 20.2%p차이로 졌다. 차기 시장으로 나오기엔 지역 조직도 없고 지역 강성층이 낙하산을 곱게 보지 않는지라 향후 전망이 어둡다.
배국환 재산
2022년 기준 25억 8017만 7천원을 신고했다.
배국환 선거 이력
2022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 성남시장
191,613 (42.88%) 낙선 (2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