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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영애 프로필 사망 나이 데뷔 작품 활동 학력

 

김영애 프로필
김영애 프로필

 

김영애

金姈愛 | Kim Young-ae

 

출생

1951년 4월 21일

경상남도 부산시 영선동

(現 부산광역시 영도구 영선동)

 

사망

2017년 4월 9일 (향년 65세)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국적

대한민국

 

 

신체

160cm, 53kg, A형

 

가족

아들 이민우

 

학력

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

 

종교

불교(법명: 문수월) → 개신교

 

데뷔

1970년 MBC 공채 탤런트 3기


대한민국의 배우.

 

김영애 리즈김영애 리즈시절
김영애 프로필 사진김영애 외모
김영애 미모김영애 인터뷰

 

김영애 데뷔 및 활동

1951년 4월 21일 경상남도 부산시 영선동(現 부산광역시 영도구 영선동)에서 태어났다.

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에서 근무하던 중, 눈에 띄는 미모 덕분에 지인의 제안을 받고 1970년 MBC 공채 3기 탤런트로 데뷔했다. 데뷔 직후부터 별다른 무명생활 없이 인기를 끌었다. 공채 데뷔 이후 2년만인 1973년 MBC 일일연속극 《민비》에서 주인공 민비 역으로 당시 KBS의 이효춘과 함께 신인에서 주연급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다만 데뷔 초에는 미모의 배우들이 흔히 겪는 연기력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이장호 감독은 1974년 작 별들의 고향 감독을 맡으며 김영애를 여주인공으로 쓰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는 드라마 연기자가 영화에 출연할 수 없었으므로 김영애는 출연하지 못했다.

이렇게 잘 나가다가 1975년 유부남 음악가와 교제를 하다가 간통죄로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후 잠시 활동을 중단했다. 이대로 연예계에서 사라지나 했으나, 당시 세상을 뒤흔든 초대형 스캔들 박동명 사건으로 많은 여자연예인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또한 사건에 연루된 여러 연예인과는 달리, 상대가 재력가와는 거리가 먼 가난한 밴드마스터였기 때문에 '이 얼마나 순수한 사람이냐!' 며 오히려 김영애를 동정하는 여론이 생겼고 오래 지나지 않아 다시 연예계에 복귀하게 된다. 첫 번째 결혼은 이 유부남과 했는데, 1990년에 이혼했다. 그리고 1998년 심리치료사와 재혼을 했다.

 

사회적 물의였던 간통으로 한동안 쉬었다가 복귀한 1980년대 이후에는 주연보다 여러 조연으로 출연하기 시작했다. 연기력 또한 출중하기 때문에, 선역과 악역을 넘나들며 활약하고 있는 중견 여배우 중 한 명이었다. 단아하고 깔끔한 동양적인 미모임에도 젊은 시절부터 시대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역할을 맡았다. 오히려 사극에서 희빈, 왕후, 대비 등 높으신 분들, 특히 최종 보스나 흑막으로 나올 때면 그 포스가 어마어마하다. 냉혹한 재벌 회장부터 정이 깊은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까지 두루 어울리는 전천후 배우였다. 특히, 명성황후역만 3번을 맡아서 중년세대에게는 민비 전문배우로 각인이 되었고, 그 연기력도 출중해 김영애의 민비 연기는 이후 명성황후의 캐릭터를 구축한 하나의 전범이 되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말까지 오뚜기식품의 전속모델로 활동했다. 즉 김자옥 후임의 오뚜기 전속 모델이었던 것. 이 시기 연규진과 함께 오뚜기식품의 각종 광고에 나왔다.

 

김영애 젊은시절김영애 젊은시절 사진
김영애 화보김영애 활동
김영애 연기김영애 화보2

 

황토팩 사업

2000년대 중반부터 '참토원'라는 황토팩 사업을 시작했다. 홈쇼핑을 통해 1,700억의 어마어마한 매출을 올려 크게 성공했다.

하지만 이영돈 PD가 프로듀싱하는 KBS의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에서 "황토팩에 중금속 함유"라는 보도하면서 매출이 크게 폭락되었고 결국은 사업을 접어야 했다. 이후 이혼까지 당했다.

그러나 2007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조사 결과, 황토팩에 포함된 자철석은 황토 고유의 성분이며 인체에 무해하다고 발표하여 중금속 함유 보도는 허위임이 밝혀지면서 억울함을 벗었다.

2010년 7월 14일 참토원이 KBS와 '소비자고발'의 이영돈 PD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재판 결과, KBS는 1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이 나왔다.

 

민사소송과는 별개로 KBS 제작 팀을 허위보드로 인한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발했으나 1심에서 '보드 내용이 허위지만 피고인은 이를 진실처럼 믿었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에 위법성 조각사유에 해당된다'고 판단되어 무죄로 판결되었고 2012년 12월 13일 대법원까지 무죄로 확정되었다.  남동생만 셋이나 되는 집안의 장녀로 "늘 돈 때문에 동시에 여러 작품에 겹치기 출연을 해야 했다"며 "돈 걱정없이 연기를 하고 싶어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잘 되던 사업이 허위보도 하나에 완전히 망해버린 이후 이로 인한 정신적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은 김영애는 결국 2012년에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치료를 위해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던 그녀는 과거에 SBS 좋은 아침에 출연해 2012년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촬영 당시 췌장암 투병 사실을 숨겼다고 밝혔다. 또한 그녀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드라마 촬영 중 암 투병 사실을 숨긴 것에 대해 "쓰러질 때까지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연기자의 자세이다." 라고 말했다. 해를 품은 달 촬영이 끝난 후에야 9시간의 대수술을 받고 완치 판정을 받았다.

 

김영애 기자회견김영애 활동2
김영애 황토팩김영애 황토팩 사업
김영애 제작발표회김영애 방송활동

 

김영애 사망

2015년 8월 '부탁해요, 엄마' 에서 주인공 임산옥 역으로 캐스팅이 되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하차했다. 1년 후에 복귀하면서 2016년 8월 27일부터 2017년 2월 26일까지 54부작으로 방송된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서 주연 최곡지 역을 맡았다. 50부 촬영을 모두 마친 후의 모습이 담긴 영상. 병세 때문에 핏기없이 창백해진 상태로 힘들어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보일 정도다. 드라마가 인기에 힘입어 연장 방영이 결정됐지만, 병세가 지속적으로 악화되면서 드라마 종영 직전의 연장 4회 분량은 출연하지 못했다.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제작진은 마지막 회에 그녀에 대한 감사의 뜻을 담은 자막을 내보낼 계획을 세웠지만, 그녀는 연기자로서 미안한 마음뿐이라며 제작진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이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녀는 영정 사진과 수의로 입을 고운 한복을 고르고, 장례 절차 등을 모두 정했다고 한다. 배우 인생을 돌아보는 마지막 인터뷰를 연합뉴스와 가지는 등 신변을 정리하기 시작했으며, 2017년 2월 초 인터뷰에서 "이제 다 정리를 해서 마음이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췌장암 투병 중에도 촬영에 임하는 투혼을 보이던 김영애는 결국 2017년 4월 9일 오전 10시 58분 경 악화된 췌장암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으며, 4월 11일 유해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분당 메모리얼 파크에 안장되었다.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과 영화 판도라가 그녀의 유작이 됐다. 

 

2017년 5월 3일에 열린 백상예술대상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이미 고인이 되었기 때문에 아들이 대신 상장을 받았다. 같은 해 12월 31일 2017 KBS 연기대상에서 특별 공로상을 받았다.

2018년 1월 14일 MBC 사람이 좋다에서 아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당시 중금속 보도 이후로 불면증에 시달리고 나중에는 약도 안 들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2019년 7월 11일 이영돈은 한 기자간담회에서 김영애에게 뒤늦게 사과했으나 여론은 싸늘했다. 

 

 

김영애 작품 활동

다양한 연기가 가능하고 그 스펙트럼도 매우 넓었다. 한 없이 여리고 착한 어머니의 모습부터 냉정하고 비열하기까지 한 여인의 모습도 무리없이 소화한다.

1999년 SBS 드라마 파도에서 열연하면서 그 해 연기대상 최우수상과 이듬해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상 및 힌국방송대상 탤런트상을 받았다. 이후 2006년 출연한 KBS 황진이에서 보여준 연기는 본인이 가장 아끼는 역할로 손꼽았을 정도의 명연기였다. 2009년 영화 애자에선 죽음을 앞둔 시한부 연기를 선보여 대종상영화제 첫 조연상을 수상했다. 2011~2012년 MBC에서의 두 작품은 아직도 회자될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데 로열 패밀리의 공순호와 해를 품은 달의 대비 윤씨 역할이었다. 강렬한 악역으로 극을 압도하는 절정의 열연을 선보였다. 이후 2014년엔 영화 변호인에서의 연기로 대종상에서의 두 번째 조연상, 청룡에서의 첫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KBS와 법적 공방을 벌였기 때문인지 황진이 이후로 2015년까지 KBS에 출연하지 않았다. 2015년 KBS 주말극인 부탁해요, 엄마에 임산옥 역으로 캐스팅되며 복귀하는 듯 했으나 건강 문제로 인해 하차하면서 그 역할은 고두심이 대신 맡았다. 2016년 주말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서 최곡지 역으로 캐스팅되면서 뒤늦게 복귀에 성공했다. 드라마 종영 이후엔 췌장암 악화로 별세하면서 생애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하지만 외출증을 끊어가면서까지 촬영을 강행했으나, 병세가 악화되면서 추가 촬영분인 마지막 4회분은 고사했다. 또한 드라마 촬영에 지장이 생길까봐 하차할 때 제작진에게 자신의 췌장암 투병 사실을 외부로 알려지 못하게 입단속을 시켰다고 한다. 이후 영정 사진과 한복, 장례 절차 를 진행하며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한 뒤 2017년 4월 9일에 세상을 떠났다. 

 

김영애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김영애 유작
김영애 사극김영애 사망

 

드라마/시트콤

1971년 수사반장 - 게스트

1973년 민비 - 민비

1974년 강남가족 - 둘째딸 영희

1978년 행복을 팝니다

1978년 청춘의 덫 - 노영주

1979년 엄마 아빠 좋아

1979년 오똑이분대 - 김효실

1979년 산이 되고 강이 되고

1980년 의친왕 - 명성황후

1980년 청춘의 초상

1981년 나리집

1981년 한강

1981년 사랑합시다

1981년 포옹

1981년 야상곡

1981년 이심의 비련기 - 이심

1982년 세자매 - 박연희

1982년 풍운 - 명성황후 민자영

1983년 겨울 해바라기

1983년 해빙

1983년 조선왕조 오백년:뿌리깊은 나무 - 소헌왕후

1983년 당신의 초상 - 사미영

1985년 엄마의 방 - 한혜실

1986년 나타리아

1986년 임이여 임일레라

1987년 이차돈 - 보도부인

1987년 애정의 조건

1987년 인생화보

1988년 제7병동

1988년 사로잡힌 영혼

1988년 순심이

1988년 13세의 봄 - 성일 모

1989년 지포리에서 생긴 일

1989년 일출

1989년 왕룽일가

1990년 구리반지 - 김복일

1990년 빙점 - 서혜연

1990년 왕조의 세월 - 순헌황귀비

1990년 우리가 사랑하는 죄인 - 이정애

1990년 여명의 그날 - 박정애

1990년 검생이의 달

1991년 까치 며느리 - 주혜련

1991년 아스팔트 내 고향 - 임기주

1991년 옛날의 금잔디 - 오정미

1992년 사랑을 의하여

1992년 가을 여자 - 정연희

1993년 살아남은 자의 슬픔

1993년 백색 미로

1993년 당신 없는 행복이란

1993년 당신이 그리워질 때 - 현주

1994년 겨울 도화리

1994년 사랑의 향기 - 명희

1995년 사춘기 - 재경 모

1995년 모래시계 - 태수 모 

1995년 그대 목소리 - 지숙

1995년 장희빈 - 대왕대비 장렬왕후 조씨

1995년 바람의 아들 - 유혜미

1996년 부자유친 - 김정자

1996년 사랑할 때까지 - 수련

1996년 컬러(회색) - 김수혜

1996년 신고합니다

1996년 남자 셋 여자 셋

1996년 형제의 강 - 이순례

1996년 사랑한다면 - 설옥순

1997년 당신뿐인데 - 양자

1997년 여자 - 이방옥

1997년 웨딩드레스 - 신정자

1998년 포옹

1998년 야망의 전설 - 신옥주

1998년 대왕의 길 - 숙빈 최씨

1998년 킬리만자로의 표범

1998년 7인의 신부 - 한마리

1998년 사랑해서 미안해 - 유승희

1999년 지금은 사랑할 때

1999년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 정진숙

1999년 파도 - 영준, 영노 모

1999년 그녀의 선택

1999년 초대

1999년 사랑하세요 - 오명주

2000년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 동훈 모

2000년 사랑은 아무나 하나 - 윤복심

2000년 민들레 - 강해순

2000년 여자만세

2001년 우리가 남인가요 - 이자경

2001년 내 마음의 보석상자 - 맹영희

2001년 신화

2002년 지금은 연애중

2002년 라이벌 - 홍주경

2002년 장희빈 - 명성왕후 김씨

2002년 맹가네 전성시대 - 지화자

2003년 러브레터 - 임경은 

2003년 달려라 울엄마 - 김영애

2003년 올드미스 다이어리 - 김유정 (특별출연) 

2006년 황진이 - 백무

2007년 내 남자의 여자 - 화영 모

2010년 아테나:전쟁의 여신 - 최진희

2011년 로열패밀리 - 공순호

2011년 천상의 화원 곰배령 - 화영

2012년 해를 품은 달 - 대왕대비 윤씨

2012년 내사랑 나비부인 - 이정애

2013년 메디컬 탑팀 - 신혜수

2014년 미녀의 탄생 - 고순동

2014년 라이어 게임 - 우진 모 특별출연.

2015년 킬미, 힐미 - 서태임

2016년 마녀보감 - 문정왕후

2016년 닥터스 - 강말순

2016년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 최곡지

 

김영애 별세김영애 드라마
김영애 영화

 

영화

1972년 섬개구리 만세 - 여교사 김선희 역 (주연) - 감독 정진우

1975년 비녀 - 박근형, 제작 정진우

1977년 설국 - 박근형

1978년 비련의 홍살문

1978년 너의 창에 불이 꺼지고 - 강주희, 남궁원, 윤일봉

1979년 로맨스 그레이 - 최불암, 사미자, 감독 문여송

1979년 돌의 초상 ㅡ 이낙훈, 한진희

1979년 누가 이 아픔을 - 박근형

1979년 깃발 없는 기수 - 하명중, 송재호, 감독 임권택

1981년 빙점 81 - 남궁원, 감독 고영남

1980년 바람 불어 좋은 날 - 안성기 유지인, 임예진

1981년 미워도 다시 한번 '80 제2부 - 남우 윤일봉

1981년 반금련 - 이화시, 신성일

1981년 깊은 밤 갑자기 - 윤일봉, 이기선, 감독 고영남

1981년 겨울로 가는 마차 - 이영하, 김진규

1982년 하와의 행방 - 신성일

1982년 불바람 - 임동진, 안소영

1982년 내일은 야구왕

1983년 아내 - 한진희, 유지인

1984년 장대를 잡은 여자

1985년 장사의 꿈 - 임성민, 금보라

1986년 비내리는 영동교

1986년 겨울나그네 - 강석우, 이미숙

1986년 이브의 건넌방 - 임동진, 나영희

1987년 연산일기 - 유인촌, 김진아, 감독 임권택

1987년 위기의 여자 - 신성일, 윤정희

1988년 미리 마리 우리 두리 - 감독 고영남

2003년 영어완전정복 - 영주 어머니 역

2009년 애자 - 최영희 역

2012년 내가 살인범이다 - 한지수 역

2013년 변호인 - 최순애 역

2014년 카트 - 순례여사 역

2014년 현기증(한국 영화) - 순임 역

2014년 우리는 형제입니다 - 승자 역

2015년 허삼관 - 계화 엄마 역

2016년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 - DH그룹 회장 사모 역

2016년 인천상륙작전 - 나정님 역

2016년 판도라 - 석 여사 역

 

 

그녀의 영화 데뷔는 감독 겸 제작자 정진우에 의해 이뤄졌다. 정진우 감독은 우진필름이란 이름의 메이저 영화사를 운영하기도 했던 영화계 거물이었으며 80년대 초 정윤희 주연의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를 연출했다.

고영남 감독과 김영애의 인연은 한국영화계의 호러걸작 깊은 밤 갑자기로 이어졌다. 이후 김영애가 주연에서 조연으로 위치가 바뀌었을 때 고영남 감독의 작품 미리 마리 우리 두리에 특별출연한다. 깊은 밤 갑자기는 지금까지도 그 영화를 본 기억이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되는 한국 공포물의 명작으로 검색엔진에서 찾으면 최근까지도 계속 후기가 나오는데 호평이 압도적으로 많다. 2010년대 기준으로 봐도 주요부위의 노출만 없다 뿐이지 후방주의를 해야 할 정도로 에로한 장면들이 있고 굉장히 충격적인 공포영화 줄거리이다. 정신착란 현상 또는 망상 증세를 보이는 여주인 역할을 김영애가 맡았는데 연기력이 볼수록 실감나서 이 영화를 걸작 반열에 올리는 데 이분의 공헌이 매우 컸다. 아니, 그보다 김영애의 열연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고만고만한 저예산 영화가 되어버리고 걸작으로 남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항목 상단에서 두 번째에 있는 젊은 김영애가 눈을 부릅뜬 모습이 이 영화의 엔딩을 장식하는 명장면이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 전두환 신 군부 장권의 3S 정책으로 인해 한국영화계에 에로영화 바람이 불었고, 그에 따라 정윤희, 원미경, 이미숙, 이기선, 이보희, 나영희, 안소영, 선우일란 등 섹시한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들이 여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자 1970년대에 문예영화로 전성기를 맞았던 김영애 또는 하이틴 영화로 인기를 누렸던 임예진, 강주희 등의 여배우들은 예전과 같은 인기를 누리지 못하게 되었으며 길소뜸(1985)의 이상아처럼 반강제적으로 노출연기를 하는 경우라든지 강수연, 조용원처럼 이른 나이에 서둘러 성인 연기를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게 되었다.

1980년대 초중반부터는 조연으로 활동을 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드라마 활동의 비중이 점차 높아진다. 1974년에 방영된 김수현 극본 MBC 드라마 수선화에 출연했으며 1978년 방영된 MBC 드라마 청춘의 덫에도 출연했으나 김수현 작가 극본 청춘의 덫은 시대 분위기상 드라마가 제대로 완결되지 못했고 청춘의 덫은 이후 한 차례 영화로 만들어진 뒤 심은하, 이종원, 전광렬 주연의 SBS 드라마로 리메이크되었다. 1983년에 김영애가 출연했던 영화 아내는 이후 KBS 2TV에서 유동근, 김희애, 엄정화 주연의 52부작 드라마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1982년에 방영되었던 KBS 1TV 드라마 풍운에서 명성황후 역을 맡았으며 1990년에 방영되었던 KBS2 드라마 버전 빙점에서 영화에 이어 여주인공 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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