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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서세원 프로필 사망 나이 데뷔 방송 활동 학력 가족관계

개그맨 서세원 프로필 사망 나이 데뷔 방송 활동 학력 가족관계

 

서세원 프로필
서세원 프로필

 

서세원

徐世源 | Seo Se Won

 

출생

1956년 3월 18일

충청북도 청주시

 

사망

2023년 4월 20일 (향년 67세)

캄보디아 프놈펜 29스트리트 4번지 미래폴리클리닉

 

국적

대한민국

 

 

본관

달성 서씨

 

학력

대전삼성국민학교 (졸업)

부산대신중학교 (졸업)

대륜고등학교 (졸업)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 / 학사)

 

 

신체

180cm, 69kg, 270mm, O형

 

가족

부인(2016년 재혼)

딸 서동주, 아들 서종우

딸 서동수

 

종교

개신교

 

데뷔

1979년 TBC 라디오

 

경력

2001 서세원프로덕션 대표이사 사장

2001 국제어린인후원단체 플랜코리아 친선대사

2002 에스에스원 시네마 대표이사 사장

2005 ~ 2006.10 닛시엔터테인먼트그룹 대표이사

2011 솔라그라티아 교회 담임목사

 

수상

1999년 제6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희극연기상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배우, 영화 기획자, 목사. 2014년 부로 네 분야에서 모두 제명되었다.

 

1956년 3월 18일,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아버지 서우석(1920~1997, 충청남도 예산군 출신)과 어머니 정태순(1920~1988, 충청북도 청원군 출신) 슬하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대전 삼성국민학교, 부산대신중학교, 대륜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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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세원 데뷔 및 활동

개그맨 경력

1979년 TBC 라디오를 통해 데뷔한 후 대부분의 활동은 MBC에서 했으며 MBC에서 활동하는 동안 영11, 청춘행진곡,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특히, 당시 대한민국 대중들이 개그맨하면 떠올렸던 "몸개그를 하거나 바보 흉내를 내면서 사람들을 웃기는 연예인"이라는 통념을 깨고 특유의 말발을 무기 삼아 말로 웃기는 개그맨의 길을 연 사람이다. MC로서도 유능해서 훗날의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과 같은 개그맨 출신 MC들이 단순히 진행자 역할에 그치지 않고 프로그램 전체를 기획하고 조율하는 주도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는 토대가 되어준 전설적인 개그맨이다.

서세원은 1980년대 중반까지 동시대의 라이벌들인 김형곤, 주병진보다 인기 면에서 언제나 우위에 있었다. 물론 1980년대 중반부터의 압도적인 원탑은 후배인 심형래였다. 그러나 심형래 직전까지 서세원이 정상급 코미디언들 사이에서도 최고였던 것은 틀림없다. 

 

 

청춘보감이라는 코너에서 서세원 최고의 유행어인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셔가 탄생했고 주병진이 본격적으로 뜨기 전 당대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를 끌고 있던 예능 프로그램도 서세원이 진행하는 영11이었다. 또한 인기 연예인을 초빙해서 개그를 하는 <서세원의 스타데이트>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훗날 대한민국 토크쇼의 교두보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 후 KBS 2TV에서 최양락이 네로 25시로 너무나 잘 나가자 MBC에서는 최양락의 대항마로 서세원을 다시 내세웠을 정도였다. KBS는 콩트 중심의 상황극, MBC는 유행어를 민다는 방향성을 보였었다.

이후 서세원은 <서세원의 스타 데이트>를 진행한 경험을 밑바탕으로 1990년대 중후반부터 토크쇼 진행자로 변신, 2000년대 초반까지 KBS 2TV의 간판 프로그램인 '서세원쇼'로 흥행하게 된다. 주 코너는 '토크박스'로 출연 연예인들이 서로 센 이야기들을 해서 서세원이 등수를 매기는 방식. 다만, 이 프로그램의 컨셉은 한국 방송의 고질적인 병폐인 일본 방송 베끼기다. 일본의 장수 인기 토크 프로그램 라이온의 고키겡요(ライオンのごきげんよう, 1991년부터 방송)의 코너 '주사위 토크'를 그대로 따라했다.

 

서세원 서정희서세원 서정희 결혼
서세원 서정희 이혼서세원 서정희 부부

 

그 외에 코미디 세상만사, '공포체험 돌아보지마', 시사터치 코미디 파일 등의 KBS 코미디 프로그램과 라디오 '가요산책', '서세원의 좋은 세상 만들기'의 진행자로 방송계에서 폭발적인 위세를 누리며 데뷔 20여년이 지난 1990년대 후반까지 김국진, 이경규 등의 탑레벨 개그맨 다음가는 1군~1.5군 정도의 위치를 꾸준히 지키고 있었다. 게다가 그 둘보다 선배였고 이경규의 일밤 전성기 시절에도 서세원 역시 본인이 진행하는 프로그램들로 나름 큰 인기를 가지고 있었으니 이주일이 암으로 사망하고 심형래가 영화 제작 문제로 빠진 21세기에, 후술된 막장 짓거리들을 안 했더라면 서세원은 현재까지도 이경규보다 예능계에서 더 압도적인 권위를 가졌을 것이다.

즉, 서세원은 신인 때부터 인기를 끄는 스타로 시작하여 정통 콩트 코미디가 유행할 때는 콩트로, 연예오락(지금의 예능)이 유행할 때는 그 진행자로, 시대흐름이 바뀌어 오는 것에 따라 발맞추어 모두 성공했던 최강 커리어의 희극인이었다. 그야말로 전성기가 아닌 적이 없을 정도. 콩트, 토크쇼, 교양성 예능, 정통 예능까지 코미디언이 진출할 수 있는 분야는 모두 진출해서 성공한 악마의 재능을 가진 자였다.

 

 

서세원은 콩트 프로그램을 하면 유행어를 여러개 만들고, 예능성 진행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아서 히트치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마이더스의 손처럼 손대기만 하면 방송을 성공시키는 개그맨이었고 TV 프로그램과 라디오 프로그램을 동시에 진행했던 90년대에는 둘다 시청률이나 청취율을 최상위권으로 만들어 히트를 시켰을 정도였기에 서세원이 엄청났다는 말이 과언은 아니다. 솔직히 과장 없이 말해도 연기력, 아이디어 응용 능력, 진행 능력, 기획 능력, 구성 능력 등 뭘로 봐도 연예인 및 방송인으로서의 능력치는 깔 게 없다. 사생활과 인간성이 비정상인 범죄 전과자라서 그렇지 그것만 정상이었으면 계속 경력을 이어가 지금 이 시대에도 노년 개그맨이나 진행자로 새로운 획을 그었을 수도 있다고 평가받는 특출난 인물이었으며, 엄청난 연예인이었다.

 

 

서세원 사망

2023년 4월 20일, 캄보디아의 한인 병원에서 링거 주사를 맞던 중 쇼크사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이전에도 사망설이 제기된 적이 있어 관계자 및 주 캄보디아 대사관에서 진위를 확인하는 등 소동이 있었다. 그 뒤, 주 캄보디아 한인선교사회에서 그의 사망을 확인했으며, 외교부와 경찰에서도 그의 사망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서세원이 사망한 캄보디아 프놈펜 미래병원 사진이 조세금융신문 보도를 통해 공개됐다.

서세원 사망 현장을 재혼녀가 지키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23살 연하인 서세원 재혼녀 정체도 밝혀졌다. 1980년생 음대 졸업 아쟁 연주자라고 하며 추정되는 사진도 공개됐다.

서세원 사망 소식을 접한 딸 서동주 측이 입장을 내놨다.

서세원은 평소 지병으로 당뇨를 앓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서세원 서세원쇼서세원 전성기
서세원 방송 활동서세원 목회자 활동 캄보디아

 

서세원 여담 일화

입꼬리가 오른쪽으로 치켜 올라가 있다. 젊은 시절 사진부터 요즘 사진까지 전부 다 그런 걸 보면 중풍 등의 질환으로 인해 입이 치우치게 된 건 아닌 듯.

1991년 말 SBS 개국과 함께 이적했으며, 다음 해 10월 7일부터 고질병인 허리디스크 때문에 한동안 방송 활동을 쉬었다가 같은 달 26일부터 SBS 측과 1년 전속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1993년 5월 1일 KBS 토요대행진의 MC를 맡은 데 이어 1993년 5월 24일 시작된 MBC 전격 팡팡쇼 MC를 맡았다. 결국 그해 7월 10일 SBS 측으로부터 고소를 당했고 같은 해 9월 1일 서울인사지법으로부터 전속계약 종료(1993년 10월 26일)까지 SBS가 허용하지 않는 타방송사 출연이 금지되었다. 이후 토요대행진의 MC는 유재석 / 양원경의 2MC 체제로 전환했다가 1993년 10월 16일 방송을 끝으로 폐지되었으며, '전격 팡팡쇼' 역시 1993년 9월 13일 자부터 정원관이 후임으로 들어왔으나 얼마 안 되어서 가을개편을(10월 11일) 거치며 막을 내려야 했다. 서세원은 '전격 팡팡쇼'에서 중도하차한 후 1995년 4월 18일 시작한 교양 프로그램 TV 시간여행을 탤런트 김희선과 공동 진행했지만 SBS와의 전속계약이 끝나지 않았던 개그우먼 정선희를 출연시킨 것이 문제가 된 것뿐 아니라 보조 MC 김희선의 "역할이 거의 없다"는 지적을 받아 1995년 가을개편으로 프로그램이 막을 내렸고 정선희는 1995년 10월 SBS를 떠나 KBS로 둥지를 옮겨야 했다. 이후 서세원은 2000년 4월 30일이 되어서야 KBS 2TV 새 프로그램 행복남녀 메인 MC를 맡기 위해 빠진 이경규의 후임으로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메인 MC를 맡아 MBC 복귀를 했지만 당시 4개 프로그램의 겹치기 출연에 따른 시청률 부진 탓인지 같은 해 5월 18일 방송분을 끝으로 빠졌고 이 프로그램이 MBC에서의 마지막 진행 프로그램이 되었다.

 

90년대 후반 당시 60살 노년의 생활배우로 접어들어 버린 전원주를 재발견해준 것이 서세원과 김미화였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파출부 아줌마 이미지 배우로 30년을 살아 설움도 겪었던 전원주는 그냥 잘해야 동년배 김지영 정도로 연기 잘하는 노인 배우에서 끝날 수도 있었지만, 예능 꽁트 고정을 맡으며 코믹이미지와 국민어머니, 국민할머니 이미지를 다 얻으며 인생이 바뀐다. 물론 전원주의 첫 섭외 자체는 그녀의 친숙한 매력을 알아본 김미화가 추진했으니 공이 더 크긴 하나, 사실 첫방송이 그저 그랬을때 서세원이 전원주를 빼지 말고(원래 제작진의 계획은 매주 중노년 정극배우를 바꿔가며 꽁트에 출연시켜 코믹연기로 망가뜨려보는 것이었다) 더 출연시켜 볼 것을 제작진에 강하게 요구했고, 점점 인기를 얻어 한달 뒤에는 인기출연자가 되었고 더 시간이 지나서는 노년스타가 되었다. 당시 전원주의 "떼레뽕 때려줘" 같은 유행어들이나 전원주 특유의 큰 웃음소리도 서세원이 전원주와 연기연습 및 대화 중 우연히 나온 말이나 웃음을 보고 얻어낸 아이디어로, 이를 실제 꽁트에 조합해서 적절할 때 쳐야 할 웃음 포인트를 구성하고 권유해 준 것이었다.(본인 분량 후 퇴장시 그냥 나가지 말고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텔레폰 때려줘"를 꼭 하면서 나가라고 시켰다.) 결국 이 사우나 꽁트가 간판 코너가 된 걸 생각해보면 서세원의 대중 취향과 극의 흐름을 볼 줄 아는 매우 탁월한 감각을 읽을 수 있다. 훗날 제2의 전성기로 토크쇼나 아침방송 출연도 많이 늘어난 전원주가 "난 바보같아 보일까봐 그때 사실 한 번 하고 안 하려 했는데, 서세원이하고 김미화가 그렇게 계속 해보자고 조르며 힘을 주더라. 연기 중 서세원이가 (애드리브로) 나한테 짓궂게 구는 장면들을 방송에서 보면 거기가 진짜 웃긴 부분들이더라. 거기서 되겠구나 싶어 힘을 얻었고 나중에는 즐길 수도 있게 되었다. 두 사람에게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전원주에게는 한참 후배들이지만 소중한 은인이었다.

 

서세원 기자회견서세원 논란
서세원 부인 폭행서세원 퇴출

 

지금은 국민MC들 중의 하나인 유재석은 신예 개그맨이었던 시절부터 서세원과 가까웠고, 서세원 본인도 서세원쇼 등에서 당시 신인이었던 유재석을 많이 띄워주었다. 그 전까지 무명이었던 유재석이 서세원쇼에서 고정 게스트로 나와 친구 찍새와의 에피소드를 맛깔나게 풀면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던 것은 유명한 일. 코미디 세상만사 시절에도 유재석을 중간 꽁트 주인공으로 넣는 걸 출연자와 연출 담당자들 회의선에서 최종 컨펌한 게 출연자 중 입김이 가장 높은 서세원과 김미화. 때문에 서세원이 유재석에게 여러모로 큰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하는 글도 있다. 물론 둘의 인성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유재석은 신인 때였던 1990년대부터 대중들, 개그맨 동기나 후배들에게 깐족거리는 비호감 이미지를 얻었던 것에 비해 은근히 선배 개그맨들에게는 예쁨과 호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심형래의 영화에 출연할 때도 심형래가 주인공(20살인 초등학교 3학년 역할)인 자신의 짝꿍 반장 역할을 유재석에게 시켜줬을 정도면 사실 꽤 대단한 총애다.

양원경은 전처와 결혼하려고 기자를 매수하여, 거짓 스캔들을 꾸며서 아내 인생을 작살냈다. 그 다음에 결혼했다고 방송에 나와 자랑했는데, 이 아이디어를 내 준 사람이 바로 서세원이라 한다. 그 뒤에 양원경은 2011년에 이혼당했다.

행적은 김형곤과 상당히 닮은 코미디언이다. 인기 절정의 코미디언이라는 빛과 주먹을 함부로 휘두르는 성격을 가진 인물이라는 어둠이 공존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박완규에 의하면 부활의 보컬로 활동하던 1997년, 서세원이 진행하던 라디오에 게스트로 출연한 적이있었는데 라디오 스튜디오로 들어오는 이들을 본 서세원이 "꼴에 락커라고 멋진 척하지 말아라"라고 말하더니 박완규에게 다짜고짜 쌍욕을 했다고 한다.

한때 KBS 2FM에서 오후 2시에 방송한 가요산책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인기가 높았는지 각종 라디오 DJ로 이름을 널리 알린 김기덕 시절의 두시의 데이트를 청취율로 이겼을 정도이다. 지방에서도 릴레이되었다.

강병규가 이병헌을 고소한 이병헌 전 애인 배후세력이라는 루머를 까발렸다. 그 후부터 강병규와 이병헌은 서로 앙숙이 되었다.

2006년에는 닛시엔터테인먼트 대표로 있었는데 이 때 박효신 등 소속 가수와 맺었던 계약이 틀어지면서 민사소송을 당해서 결국 계약 보증금 약 9억 원을 배상했다.

 

 

2009년에 주가 조작 및 회사 자금 횡령으로 인해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선고를 받고 행정안전부가 주가 조작, 횡령, 도박 의혹, 폭행, 강간 등을 일으킨 서세원에게 KBS·EBS·SBS 영구출연정지 처분을 내렸다. 집행유예가 끝나는 2012년에 KBS·EBS·SBS가 행정안전부에게 출연정지 해제를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다. KBS 미디어에선 이런 이유로 인해 서세원쇼에 대한 영상 판매가 되지 않는다.

사실 서세원이 목사가 된 것도, 서정희가 이 남자를 반드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한 시도였다. 서세원이 연예인, 그것도 코미디언 출신이라서 설교를 굉장히 재미있게 하여 교회를 번창시키는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만했다고. 하지만 막상 서세원에게 목사 일을 시켜 보니 교회도 제대로 못 굴렸고, 무엇보다도 그 고약한 인간성이 역으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결국 교회도 문 닫고 대한장로교협회에서도 제명당하고 끝났다. 애초에 코믹한 이미지도 코미디언 시절의 방송용 이미지일 뿐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딸 서동주의 명의로 큰 돈을 빌려서, 자기가 운영하는 회사 여직원을 딸과 닮게 성형수술하려고 시도했다. 이때 서동주가 반발하자 서세원은 머리끝까지 화나서 딸을 무척 혼냈다고 한다. 이쯤 되면 그야말로 뼛속까지 인간 말종. 다만 2020년에 딸 서동주가 낸 회고록 "샌프란시스코 이방인"에 따르면 "대출을 받아서 여직원을 딸처럼 성형수술한" 게 아니고, "여직원을 딸로 위장시켜 대출사기를 친 것"이다. 양자는 엄연히 성격이 다른 일이다. 물론 어느 쪽이든 간에 서세원이 인간 말종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2014년 8월 아들 미로와 딸 서동주는 법원에 모친보호요청을 하면서 서세원은 현재 서정희에게 반경 1km 이내 접근금지 명령을 받았다. 게다가 이걸 신청한 사람들은 아내가 아닌 자녀들이니, 이쯤 되면 이미 자녀들도 그를 내다버렸다. 부부 사이가 나빠도 자녀들과 잘 지내면 상황에 따라 동정할 수는 있겠지만, 그는 자녀들도 내다버렸으니 아주 작은 동정도 쓸데없다. 이에 대해 그는 "표현의 자유라 해도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면 안 된다"며 날뛴다. 이 추태를 어디까지 보여주려고 이럴까? 누구나 알다시피그는 이미 아버지로서도, 남자로서의 자격도 잃은 상황이다. 이런 인간에게 물들지 않은 자식들이 대단할 뿐이다.

 

서세원 방송 퇴출서세원 주가조작 논란
서세원 목사 안수서세원 인터뷰2

 

2013년 6월에 채널A의 서세원 남희석의 여러 가지 연구소 진행자로 방송에 복귀했으나 1개월, 즉 4회 만에 시청률 부진으로 종영되었다. 다만 4회 만에 종영된 이유는 애초에 4회분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기획돼서 그렇다고 한다.

2013년 6월 28일에 올라온 동영상에서 간통죄를 폐지해야 되는가에 대한 주제에서 찬성의 입장을 표했다. 찬성이든 반대이든 상관없이 다른 이들의 입장 또한 존중받아야 하나 혼인 중 다른 여자를 만나고 외박하는 등 그 동안의 내로남불스런 행적들을 보면 말이 안된다. 어쨌든 위 영상에서 간통을 하는 것은 개인의 도덕적 양심에 맡겨야 된다고 말했다. 본인은 도덕적 양심이 없다고 인증한 셈이다. 2분 11초 쯤에 "간통죄는 폐지되기는 아직 이르다며 여성은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라는 발언에 "아~" 하고 이해하는 듯의 뉘앙스를 취했다.

2015년 5월 14일, 법원은 서세원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015년 9월 7일,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성과 홍콩으로 여행을 갔다. 이게 서세원이 이혼하기 전의 일인지 이혼한 후의 일인지는 밝혀지진 않았다. 하지만 즉각적으로 나온 서세원의 반박도 들어보자. 2016년 2월 5일, 거짓말임이 들통남. 2015년 말, 딸을 출산했다고 한다.

2016년 11월 3일, 동아일보가 취재한 근황으로는 최근 경기도 용인시 타운하우스 건설 사업으로 큰 돈을 벌었고, 최근에는 위에서 언급된 내연녀와 딸을 데리고 용인시에서 살면서 새로운 타운하우스 건설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한다.

2019 12,  아내와 딸을 데리고 캄보디아로 이주한 것이 확인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5 (2014)부터 캄보디아 도시건설 사업에 참여했으며 문화관광부 장관의 제안으로 방송사를 세우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후 프놈펜에서  아내, 딸과 거주 중이였으며 2022 5 19,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가정의  행사 '우리 모두  함께 즐겁게' 교민장기자랑대회의 특별 MC 출연하는  국외에서 활동을 이어 나가나 했으나, 결국 캄보디아에서 의료사고로 객사했다.

 

 

서세원 방송 및 작품 활동

영화

2013 다큐멘터리 부부

2010 젓가락

2004 도마 안중근

2002 긴급조치 19호

2002 4발가락

2001 조폭 마누라

1995 슈퍼선데이

1994 영구와 우주괴물 불괴리

1986 납자루떼

1982 바보들의 청춘 '82

1981 이런 여자 없나요

1981 연분홍 치마

1981 나리집

1980 머저리들의 긴겨울

 

방송 / 광고

동화약품 까스활명수

1996 공익광고협의회 서세원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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