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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 프로필김태원 프로필2
김태원 프로필

 

김태원

金泰源

 

출생

1965년 4월 12일 (57세)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 2가

 

국적

대한민국

 

본관

충주 김씨

 

 

학력

서울역촌초등학교 (졸업)

숭실중학교 (졸업)

충암고등학교 (전학) → 숭실고등학교 (졸업)

장안대학교 (무역학 / 졸업)

 

신체

175cm, O형

 

가족

3남 2녀 중 셋째

배우자 이현주

딸 김서현(1997년생), 아들 김우현(2000년생)

 

병역

면제 (수형)

 

종교

가톨릭 (세례명: 바오로)

 

약력

대구가톨릭대학교 석좌교수

 


한국의 음악 그룹 부활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 작사가, 작곡가, 프로듀서. 부활의 명곡들을 대부분 직접 작사·작곡했다.

 

김태원 데뷔 및 활동

1980년대 록밴드가 번성하던 시절 백두산의 김도균, 시나위의 신대철과 함께 대한민국 3대 기타리스트로 꼽히곤 했다. 당시 발라드적 음색 탓에 시나위, 백두산에게 그건 록 음악이 아니라고 질타를 많이 받았을 것이라 추정하지만 직접 들은 적은 없다고 본인이 유튜브 영상에서 밝힌 바 있다. 하지만 2009년 놀러와에선 질타를 받았다고 말했었다.

 

김태원 프로필 사진부활 김태원
김태원 기타김태원 기타연주

 

반면 김태원은 후에 라디오스타에서 백두산의 보컬 유현상이 트로트 가수로 활동한 것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자 굳이 생활고나 현실에 관해 얘기하지 않고 "트로트가 락보다 아래인 장르냐, 음악이란 큰 바다일 뿐인데 그걸 변절이라 할 수 없다"고 유현상의 편을 들어주었다. 특히나 폴 메카트니가 했던 말이라며 "음악을 차별하는 것은 인종차별보다 더 끔찍하다"라고 강력하게 말했을 정도다.(다만 김태원이 말한 것과 달리 폴은 저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뭐 어디까지나 백두산의 당시 말은 김태원이란 사람을 저격했던 것도 아니고 음악에 관해 한마디 한 것뿐이기에 별 감정은 없는 듯하다. 나란히 두 팀이 방송에 나와 사이좋은 모습을 보인 적도 있고. 그리고 감정을 떠나 그의 음악적인 철학까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흔히 회자되는 '서대문파' 기타리스트로, 간단히 말하자면 골방에 틀어박혀서 자아도취하면서 밥도 안 먹고 기타만 16시간씩 치는 기타리스트. 부활 데뷔 전까지는 게리 무어나 지미 페이지 풍의 블루스-하드록 기타, 특히 서스테인이 많이 필요한 미드템포 애드립에 능한 것으로 유명했다. 부활의 전신이 되는 The End 시절에는 타카사키 아키라에 빠져서 완벽한 헤비메탈을 하고 싶어했다고.

3남 2녀 중 셋째로 위로 형 둘에 밑으로 여동생 둘이 있다. 막내 아들이기에 애정을 많이 받았고 갖고 싶은 것도 가지면서 자랐다고 한다. 국민학교 4학년 때는 축구를 좋아했다고 한다. 충암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짤려서, 숭실고등학교로 전학한 후 여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기타에 전념하였다. 여학생에게 기타를 쳐주고 싶어 2년 걸릴 기타를 1년 만에 쳐냈다고 한다.

 

 

데뷔 후에 김도균, 신대철이 리치 블랙모어나 타카사키 아키라 등의 영향을 적잖이 받으면서 헤비하면서도 속주 중심의 테크니션으로 변하는 가운데 단순하고 서정적인 곡조, 혹은 전주나 간주에서의 사운드를 풍부하게 하는 다양한 시도를 했는데, 이는 김태원이 그 둘에 비해서 팝음악 작곡가로 월등히 이해도가 높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면모는 부활 초기의 대표곡인 '희야'와 '비와 당신의 이야기'에서 잘 드러난다.

부활의 대부분의 노래를 직접 작사, 작곡한다. 다만 1집의 '희야' 같은 경우는 김태원이 쓴 게 아니라 김태원의 친구인 작곡가 양홍섭의 작사, 작곡, 2집의 '회상3'는 '마지막 콘서트'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이승철이 리메이크하면서 바꾼 이름이며,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를 위해 썼다. 가사에서 나오는 소녀가 바로 아내다. 여담이지만 가사에서 소녀가 울고 밖으로 나가는 이유는 당시 김태원이 약에 취해서 연주하는 모습을 차마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참고로 이 '회상3'는 부활2집을 녹음하던 도중 녹음실에서 이승철이 보는 앞에서 한 번에 쓰였다고 한다.

신정환과 탁재훈이 진행하던 KBS의 예능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에서 신정환이 '마지막콘서트'의 소녀를 안다고 말하여 이승철을 당황하게 만든 바 있었다. 당연히 당시의 신정환은 김태원도 그의 아내 이현주도 모르는 상태였다.

부활 출신의 보컬 중 가장 성공한 이승철과는 그야말로 영화 속 애증의 관계다. 둘이 여러가지 일은 많았으나 간간히 합작해서 음악 작업을 하고, 그 때마다 명곡들이 발표되었기에 다시 한 번 이승철이 부활에 합류해 주길 바라는 팬들도 있다. 한때 김태원의 유튜브 채널의 조회수 1위 영상도 이승철과의 관계를 다룬 영상였을 정도다. 사실 이승철과의 관계가 너무 영화 같아서 그렇지, 이승철 이외의 다른 보컬들도 우여곡절도 많고 오래 가지 못했다. 특히 김태원의 완벽주의적 성향 때문에 역대 부활 보컬들을 엄청 쪼았다고 본인이 남자의 자격 아마추어 밴드에서 언급. 사실 문제아 보컬 김성민 때문에 한창 열받아 있을 때 언급한 것으로 전문은 김성민이 1년 내내 항상 걱정만 할 뿐 뭐 하나 나아지는 게 없다고 화를 내며 "오늘은 일단 참을 건데요. 끝나고 보자고. 망치기만 해봐. 다 엎을 거야. 내가 역대 부활 보컬들에게 어떻게 했는지 보여준다!!"라고 씩씩대자 윤형빈과 이경규의 멘트와 자막으로 부활 보컬들에겐 인자한 국민 할매가 아니라 마귀 할멈이라고 언급한다.

 

김태원 인터뷰김태원 화보
김태원 무대기타리스트 김태원

 

특히 김태원이 돈 때문에 잘랐다고 인정한 이성욱, 조금 복잡한 관계였던 박완규, 그 외 부활 디스코그라피에나 언급되는 수많은 탈퇴한 전 멤버들. 김태원의 좋게 말하면 음악적 욕심과 완벽주의, 나쁘게 말하면 독선과 아집 때문에 밴드 이름 그대로 음반 낼 때마다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기를 반복한 그의 음악사를 그대로 말해준다. 좋은 예로 안녕을 만들 때 400%나 투자했었다. 여기서 프로란 스튜디오를 3시간 반 쓸 때를 칭한다. 보통은 한 프로나 두 프로, 아주 많아야 10프로 안에 끝내는 경우가 많은데 400프로면... 진지하게 계산을 해보다면 1프로가 3시간 반이면 분으로는 210분이다. 여기에 400을 곱하면 84,000분. 한시간이 60분이니 나누기 60을 하면 1,400시간. 1,400을 하루의 기준인 24로 나누면 58.333...인데 24×58=1392다. 그러니까 안녕 하나 만드는데 무려 58일하고도 8시간을 공들였다 이건 멤버들이 먼저 죽어날 지경이다. 너무 무리한 녹음으로 인해 이때 이성욱이 성대결절에 걸렸다. 김기연도 괜히 녹음 과정 중에 성대결절에 걸린 것이 아니다.

보컬들과 음악적 견해 차이로 헤어질지언정 인간적으론 종종 교류하는 모양이다. 서로 아예 척을 진 걸로 많이 알고 있는 이승철과도 부활 멤버들과 함께 빈소를 지키기도 했다. 보통 팀을 탈퇴하면 특별히 교류가 없는 게 정상인데 부활 보컬들과는 1년에 한 두번은 연락을 주고 받는다고 한다.

1987년과 1991년 대마초로 두 차례 입건되었다. 결국 그는 대마초를 끊기 위해 "아내를 위해 약을 끊어야겠다 결심하고 외진 섬으로 들어갔다"며 한 번 들어가면 밖으로 나오기 쉽지 않은 섬으로 들어가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던 약병을 돌멩이를 묶어서 과감히 바다로 던졌다. 근데 다시 건져 냈다고 한다.

약을 바다에 던진 것은 반드시 약을 끊고 새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하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 코란을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종교서적을 섭렵하며 마음을 다잡았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밝히며 "'결국 약병을 건지기 위해 수경까지 쓰고 바다로 뛰어들었다.'"고 MBC 드라마넷 미인도에서 밝혔다. 참고로, 병역면제 사유도 저 마약 전과 때문이다.

 

2008년 라디오스타에 출연했을 당시 본인의 금단 현상을 언급하던 중에 "항간에는 (대마초는) 중독성이 없다 이런 얘기를 하더라"라는 윤종신의 질문에, "문제가 뭐냐면 그걸 하면 그 위를 가게 되니까 하얀색 그거 그걸로 가는 거에요"라고 말해 대마초를 넘어 마약으로 가게 됨을 경고했다. 이 이야기는 방송에서 아주 짧게 언급되고 넘어갔다. 어쨋든 금단증상으로 괴랄한 폭식을 했다고 한다.

1989년 이승철이 탈퇴한 뒤엔 4년 동안 거지로 살았다고 한다. 학원 영어, 수학강사를 하던 여자친구(지금의 아내)가 하루 1000원씩 줬다고, 통장도 이 즈음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이유는 이승철이 '마지막 콘서트'로 리메이크한 '회상3'의 저작권 수입 때문에. 1집과 2집의 히트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들어오는 돈은 없었다고 방송에서 밝혔다. 1993년도 첫사랑을 위한 곡 '사랑할수록'이 들어간 3집을 쓰고 모든 자신의 상황이 뒤집어졌다고 한다. 그 당시 누구도 자신이 뜰 거라고 상상조차 못할 정도로 술과 마약에 찌들어 있었고 끝내는 정신병원에 감금당했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다. 그렇게 망가진 자신에게 제 발로 찾아와준 김재기가 있었기에 재기가 가능했다고 한다.

작곡적인 능력으로 말한다면 '네버 엔딩 스토리'의 굴지의 히트 이후로는 자기복제 경향이 심해졌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부활 팬층도 어느덧 나이가 40대 이상인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팬들이 뭔가 새롭고 혁신적인 사운드를 원하는 것도 아니며, 팬이 아닌 사람들도 부활이 신선한 사운드를 들려주길 기대하는 것은 아니기에 큰 문제가 되진 않는 모양이다. 다르게 보면 김태원 특유의 색을 가지고 있다고도 표현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부활 앨범은 따로따로 떨어진 곡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한 편의 소설과도 같다는 점이다. 거의 모든 곡이 김태원의 사랑 혹은 인생사를 모티브로 쓴 노래다. 그리고 예능 출연으로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데도 그동안 발매된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 OST, 디지털 싱글 등의 퀄리티는 상당하며 이 곡들만 모아도 하나의 앨범이 완성될 정도의 분량이다.

이에 김태원은 조금 강하게 자기 입장을 밝혔는데, 세상엔 수많은 뮤지션이 있고, 나는 내 음악을 하는 것. 때문에 다른 음악은 다른 뮤지션에게서 찾는 게 맞다는 입장이다. 듣고 보면 맞는 말이다. 사실 '사랑할 수록', '네버 엔딩 스토리' 두 히트곡 모두 정말 김태원의 인생이 나락까지 떨어졌을 때 나온 곡이다. 사실, 네버 엔딩 스토리 이후 곡이 비슷하다는 의견 자체는 어느정도 맞는 말이며 이는 김태원 본인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김태원의 에세이에 있는 "나는 음악이 좋았기 때문에 마약과 감옥살이, 알코올중독도 이겨내고 현재의 모습으로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의 고통이 따라야 히트곡이 나오는 거라면 더 이상 명곡을 만들지 않겠습니다. 이제 어떤 스토리를, 인생의 가사를 쓰기 위해 가시밭길을 걷는 경우는 없을 겁니다."라는 글에서 느껴지는 김태원의 심경 변화를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2011년 남자의 자격을 통해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라는 이름의 합창곡을 작사/작곡했다.

SBS 힐링캠프에서 밝히길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굉장히 좋아한다고 한다. 비와 관련된 곡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이고, 잠 잘 때는 커튼으로 방의 창문을 막아서 어둡게 한 뒤에 스테레오사운드 오디오로 24시간 빗소리가 흘러나오는 CD를 틀어놓는다고 한다.

박완규의 인터뷰에서 언급되기를, 생활고로 인한 이혼과 성대가 망가지는 시련을 겪고 있을 때 '비밀'이라는 곡을 들고 와서 무작정 부르도록 시키면서 그의 재기를 도왔다고 한다. # 마약을 하면서 방황하던 자신을 김재기라는 인물이 도와주었던 것처럼 자신도 방황하는 후배를 도와준 셈이다. 그리고 2007 부활과 박완규 모두 힘든 시절에 자신을 믿고 모든 맡긴 것은 박완규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미 2009 라디오 스타에 출연했을 이미 김태원은 콜라보를 하고 싶은 보컬 하나로 박완규를 지목하기도 했다.

대단한 영화광으로 약 1만 편 가량을 보았다고 한다. 책을 읽지 않는 만큼 영화를 많이 본다고 한다. 예능에서 자주 고전 영화를 언급한다.

무릎팍도사에서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 남자의 자격 탭댄스편에서는 백야를, 그리고 힐링캠프에서는 한혜진이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언급하자 바로 알아차리는 모습을 보였다. 2집에서, 그리고 부활의 가장 유명한 연주곡인 'Jill's theme' 또한 거장 음악가 엔니오 모리코네가 작곡했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의 OST다.

2016년 앓았던 패혈증이 재발해 후각을 잃었다고 밝혔다. 한동안 방송에서 보이지 않았던 이유였으며, 된장찌개 냄새로도 글을 쓰던 김태원이였기에 우울증까지 앓았다고. 여름에 음식물 쓰레기 버리면서 아주 살짝 난 그 냄새에 정말 행복했다고 한다.

현재 메인으로 쓰는 일렉기타는 김태원 클라스에서 공개 했는데 ESP 호라이즌 커스텀 기타다. 픽업은 ESP에서 기본으로 넣는 디마지오가 아닌 던컨 험버커 픽업을 넣었고 플로이드 로즈 암을 넣어서 쓰고 있다.

 

김태원 방송부활 초창기 멤버
부활 젊은시절이승철 김태원

 

김태원 장비

뮤지션 중엔 정말로 드물게 장비에 큰 욕심이 없기로도 유명하다. 케이블TV의 모 프로그램에서 김구라가 기습적으로 그의 집에 인터뷰를 간 적이 있었는데, 집에 있는 것은 당시 엔도서 활동으로 받았던 일렉기타 하나와 통기타 하나 이렇게밖에 없었다고 한다. 좋은 기타를 선물받은 적도 많지만 후배나 지인들에게 대부분 나눠주었다고 한다. 본인이 기타를 주문 제작할땐 플로이드 로즈 브릿지와 던컨 픽업이 들어가야 하고, 일단 가벼워야 한다고 한다. 무게의 경우 체력적인 문제로 보인다.

같은 맥락의 이야기로, 한때는 공연에서는 앰프+이펙터(GT-6)하나 + 기타 조합으로 연주를 한다고 한다. 다만 이는 김태원의 '복잡한 건 싫다'라는 성격도 어느 정도 반영이 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VOX사의 Tonelab LE 멀티이펙터 + BOSS사의 EQ페달 GE-7 + Vertex사의 볼륨페달을 함께 사용한다.

폴 제페토 가니메데 김태원 시그니처도 사용하는데, 폴 제페토는 김태원 본인이 설립한 기타 제조사이며 옆에 붙은 제페토는 피노키오를 만든 장인의 이름이다. 그런데 세계적인 기타 브랜드로 성장시키겠다는 포부와는 달리 품질은 많이 전문적이지 못하다는 듯하다. 그래도 커스텀 오더(주문제작) 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웬만한 하이엔드 기타가 부럽지 않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폴 제페토가 좋은 인지도를 얻은 이유는 은퇴한 노령 장인과 장애인을 고용하고, 수익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운영하는 데 있다. 이러한 사회적기업 성격에 주목한 최근의 조선일보 기사에서는 노사문제로 논란이 된 모 업체와 비교하며 호평하는 뉴스 댓글을 볼 수 있다.

 

 

김태원 연주력

오해가 없도록 미리 써두자면, 80년대의 기타 실력은 주로 속주와 화려한 손가락 움직임, 90년대에는 톤 메이킹이 한국에서는 가장 중요했다. 80년대 기준으로 볼 때 김태원은 속주에 관해서는 다른 둘에게 떨어질 게 없었다. 90년대 기준으로 볼 때 두 기타리스트에 비하면 단조로운 면이 있었으나 김태원 고유의 톤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화려한 테크닉 면에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특유의 톤 메이킹에 있어서는 폄하될 이유는 없다. 어차피 셋 다 이제는 흘러가는 기타리스트고, 기타 장인에 가까운 김도균/신대철에 비해 작곡가에 가깝고 동시에 체력적으로도 문제가 많은 김태원이 빠른 노쇠화가 왔을 뿐이다.

신대철, 김도균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타리스트로서의 김태원은 저평가를 받는 경향이 있다. 테크닉적인 측면에서 볼 때 신대철, 김도균에 비해 떨어지지 않느냐는 말이 나오곤 하지만 특유의 톤 메이킹, 멜로디 메이킹 능력 등은 우리나라 기타리스트 중에서도 독보적인 수준이다. 물론 뮤지션이란 기준으로 볼 때 부족한 연주력을 멜로디메이킹 능력이나 작곡능력으로 보완하고도 남는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2000년대 이후로 새로운 연주 주법, 리듬, 스케일 등 기타연주에 많은 시도와 발전이 있었고, 그에 따라 기타 플레이어들의 수준이 극도로 상향평준화된 현시대의 관점으로 보자면 김태원의 연주 스타일은 조금은 진부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추측으로 김태원은 기타리스트보다는 뮤지션 (이라기보다도 여러 락넘버 히트곡을 작곡한 네임드 작곡가이자 장수밴드의 리더)으로써 더 높이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엄밀히 말해서, 8~90년도 전성기부터 2010년대까지 연주가이자 작곡가로서 뛰어난 기량을 보여준 김태원을 오로지 현시대의 기준에 맞춰진 '연주력'이라는 관점에서 놓고 비판하는 것도 어폐가 있다.

김태원의 기타 연주는 특유의 서정적이면서 따뜻한 기타톤, 깊은 비브라토와 밴딩, 최대한 감정을 담은 연주가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굳이 손가락을 많이 움직이지 않아도 소리가 꽉 차는 감동을 주는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애초에 김태원이 정말 실력이 형편 없다면 3대 기타리스트로 인정 받을 수 없다.

 

김태원인터뷰2김태원 기타연주실력
김태원 활동김태원 방송

 

김태원 주요 음악 작품

김태원은 프로 기타리스트로 데뷔한지 30년이 지났지만 기타 솔로 앨범을 낸 적이 없다. 부활 초기 음반인 1집과 2집에서는 속주플레이와 블루지한 연주, 클래식과 록을 접목시킨 독특한 분위기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 그 이후는 기타 테크닉에 치중하거나 기타 솔로를 드러내는 스타일이 아니라 곡 전체 또는 그룹 전체의 사운드 완성도를 높히기 위한 기타 연주를 하였다. 솔로 기타리스트라기 보다는 밴드 기타리스트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김태원의 기타 연주는 특유의 서정적이면서 따뜻한 기타톤, 깊은 비브라토와 밴딩, 최대한 감정을 담은 연주가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굳이 손가락을 많이 움직이지 않아도 소리가 꽉 차는 감동을 주는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부활은 앨범을 낼때마다 1~2곡 정도 연주곡을 넣었다. 이 연주곡을 통해 김태원의 기타 연주 스타일 변화도 느낄 수 있다.

 

인형의 부활 (1집)영상

2월7일 (2집)

Jill's Theme (2집)영상

8.1.1 (3집)

별 (3집)영상

그리움 그리는 그림 (3집)

시간의 칠 (4집)

이분쉼표 (4집)

불의발견Ⅰ,Ⅱ, Ⅲ (5집)

이상시선Ⅰ,Ⅱ, Ⅲ (6집)

Color (7집)

눈먼 아이가 본 풍경 (8집)

시계의 반대방향 (8집)

Promenade (9집)

Rain (9집)영상

Over The Rainbow (9집)

4.1.9 코끼리 탈출하다 (10집)

Second 8.1.1 (10집)

1971여름 (11집)영상

부활 (13집)

 

이 외의 기타 연주곡으로는 영화 아이 러브 유 OST에 수록된 어제, 여운, 자전거와 영화 내머리속의 지우개 OST중 Children of August, 기타프로젝트 밴드 D.O.A의 Dead or Alive, 겨울오후 가 있다.

2014년 10월 kbs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 출연하여 뜨거운 안녕에 레드 제플린의 Kasmir과 영화 쉘부르의 우산 테마곡인 I'll Wait For You를 편곡 연주하였고, 2015년 4월 불후의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 출연하여 홀로아리랑에 애국가를, 12월에는 노민우와 함께 출연하여 조용필의 모나리자에 잉베이 맘스틴의 Icarus' Dream Suite Opus4 # 편곡 연주하였다. 2017 4 불후의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 출연하여 사랑의 의지에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편곡하여 연주하였다. 김태원은 음악 대가들이 남긴 곡으로 편곡하고 멜로디를 구성해보면서 보통 본인이 영향을 받은 음악으로 작가나 가수가 나오는건데 이들의 곡을 듣고 자란 세대로서 조건없는 선물을 받고 자랐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김태원 건강김태원 방송이력
김태원 3대기타리스트김태원 기타장비

 

김태원 여담 일화

예능에서 기상천외한 언변으로 큰 재미를 주고 있으나, 김태원이 하는 오만가지 썰들의 상당수가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라 단지 뻥에 불과하다는 점은 유념하자. 워낙 어렸을 때부터 구라를 잘 지어내는게 습관화 돼서, 즉흥적인 썰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도가 튼 스타일이다. 심지어 보지도 않은 영화도 제목과 포스터만 보고 친구들에게 자기가 그 영화를 본 것처럼 즉흥적으로 스토리를 지어내서 신나게 얘기해 줬는데, 친구들이 다들 재밌어했다고 한다. 그렇게 상상력을 동원해 구라썰을 지어내며 흥미진진하게 썰을 풀던 장기가 먼 훗날 예능에서 빛을 발하게 된 것. 성인이 된 후에도 구라소설 창작솜씨가 여전하다는데, 이건 그의 친구나 같이 작업한 음악인, 남자의 자격 팀 등 동료 연예인들도 모두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김태원의 특징이다. 남자의 자격에서 이경규가 김태원의 얘기는 절대 믿지 말라고 했을 정도다. 오죽하면 본인이 직접 방송에서 '김억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태원이 억 마디 말을 하면 그 중 3가지만 진실'이라는 뜻의 줄임말. 김태원 본인도 자신의 얘기에 과장이나 허구가 많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어쨌든 많은 이들이 시청하는 방송에서 즉흥적으로 튀어나오는 소설 창작 본능을 발휘하곤 하는 버릇 때문에 의도치 않게 왜곡된 정보를 퍼트리기도 한다. 예를들어 라디오스타에 출연했을 때, 음악은 좋은 음악이냐 나쁜 음악이냐로 구분되는거지 장르간의 상호 비하나 갈등같은건 좋지 않은 거라면서, 비틀즈의 멤버 폴 매카트니도 "음악을 차별하는 것은 인종차별보다 무섭다"라고 말한 바 있다고 인용하는 바람에 한국 인터넷상에서 폴 매카트니가 실제 그런 말을 한 것처럼 퍼지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은 폴 매카트니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김태원이 자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또 즉흥적으로 허구썰을 지어내어 말해버린 것이다. 역시 김억삼이란 별명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국민할매로 워낙에 유명해서 나이가 많은 것 같고 나이가 많아보이지만 사실은 1965년 4월 12일생으로 이경규보다는 5살 어리고, 믿기지 않겠지만 이승환과 동갑이다. 절친인 김종서, 김국진과도 동갑. 이승철과는 단 1살 차이로 이승철이 1살 어리다.

무릎팍도사에서 아들에게 자폐증이 있다고 고백했다. 아내와 딸, 아들이 필리핀으로 이주하여 살고 있으며 자신이 기러기 아빠 신세인 것도, 아들의 자폐증에 대한 주변의 시선에 많은 상처를 받는 등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저평가되는 뮤지션 중 하나. 특히 예능에 출연하게 되면서 김태원을 잘 알지 못하는 초중딩들 사이에서 일명 '미친' 할매로 통하고 있다. 물론 예능에 출연함으로 김태원 자신은 물론 부활이 젊은 층에서도 꽤나 유명해졌으니 김태원 본인은 만족하고 있겠지만, 한국의 전설적인 뮤지션(& 프로듀서) 중 한 명이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초중딩들에게 저런 취급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시청률 20%를 돌파한 위대한 탄생 시즌 1에서 국민멘토로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대학생이 멘토로 삼고 싶은 인물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김구라와의 친분으로 유명하다. 라디오 스타에 꽂아준 것도 김구라라고. 그래서인지 이경규가 강호동 앞에만 서면 파워업하는 것처럼, 김구라도 김태원 이야기만 나오면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인다. 김태원이 김구라의 팝지식을 인정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댄다는 평을 벗은 점도 있으므로 상호 보완적이기도. 어쨌든 김구라가 무명 시절일 때 만나서 팝 이야기를 하며 친해졌다곤 하는데, 아주 무명이던 시기는 아니고 지상파에서 활약하기 직전이였다. 케이블에서 구봉숙이 MC를 봤던 '쏜데이서울' 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왔던 김태원의 모습을 보면, 그때 김구라를 처음 본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김태원 본인은 명랑 히어로에서 김구라가 당시 인터넷 방송 황봉알/김구라의 시사대담에서 "김태원은 사랑 노래밖에 안하는 가수다" 라는 말을 했는데 이걸 김태원의 친형이 들었고 김태원의 친형이 직접 만나서 "내 동생이 사랑 노래만 하는지 아닌지 이야기 한 번 해보라" 라고 주선을 해줘서 처음 만나봤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전술한 쏜데이 서울 김태원편을 보면 전에 만나봤다고 볼 수 없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또 김억삼 본능으로 뻥을 친 것인지, 쏜데이 서울에서 모르는척 한 것인지는 본인만 알 것이다.

가톨릭 신자로 세례명은 바오로. 독실한 신자인 아내의 소원이 온 가족이 미사를 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입교하게 되었다고 한다. 가끔 가톨릭 관련 행사나 강연에도 참여하고 주보에 글을 실은 적도 있다.

 

 

예능에서 체력이 바닥이라고 자주 어필하는 국민할매이나, 부활 정규 콘서트는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으로 하루에 2번씩 개최하는 경우가 흔하며 금, 토, 일은 공연 스케줄로 꽉 차있는 경우가 흔하다. 이 많은 공연을 전부 라이브로 소화해낸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어떤 의미에서 강철 체력이라 하겠다. 하지만 라디오스타 크리스마스 특집 참여 당시에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 복수가 7kg씩 차서 죽을 뻔했을 정도로 건강 문제가 심각했으며 대마초 후유증도 심각했던 편이었다.

예능프로에서 뭐든지 재밌게 얘기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떠벌리는걸 좋하는게 아니라, 인간관계적인 갈등과 같은 민감한 사안은 어떻게든 상대방에게 상처나 부담을 덜 주기 위해 되도록 언급을 회피하거나 조심스럽게 말하기도 한다.

표절에 대해서 결벽증 수준으로 싫어한다. 곡 작업이 시작되면 그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어떠한 음악이 아닌 음도 들리지 않게 스스로를 가둔다. 부활 초기에는 아예 사람이 없는 외딴 지역이나 무인도에 가서 작곡을 했다고 하며, 엘리베이터에 층 도착 소리도 자신의 음악에 섞이는게 싫다는 이유로 엘리베이터도 안탄다고 한다. 취미로 낚시를 할때도 음의 틀을 잡기위해서 그냥 낚싯대만 하루종일 잡으면서 앉아있는다고 한다. 다만 이 이야기가 잘못 전파돼서 김태원은 자신이 작곡한 노래 외에는 아예 듣질 않는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으나, 의외로 아이돌 노래나 최신 가요들도 꾸준히 듣는다. 그래서 방송에 다른 가수와 출연하면 얼굴은 못알아보지만 최근에 나온 노래를 의외로 알아듣는 경우가 꽤 있다.

 

김태원 부활 무대김태원 기타 연주 무대

 

2014년 3월 31일부터 4월 4일까지의 인간극장에 출연했다. 자폐아 아들과의 이야기를 다뤘다.

2015년 8월 25일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했는데, 치아 문제 때문에 5~6년 전부터 제대로 된 음식은 못 먹는다고 한다. 7년 전까지만 해도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좋아했었으나 어금니가 하나씩 빠지기 시작했던 탓에 돈까스로 대체하고, 갈수록 더 안 좋아지는 치아 상태로 인해 돈까스마저 끊어버리고 짜장면으로 대체, 거기서 더 안 좋아져 짜장면까지 못 먹었다고 한다. 그 후로는 음식을 거의 앞니로밖에 씹지 못하게 되었다고. 이 날 셰프들은 치아가 좋지 않더라도 김태원이 즐길 수 있도록 신경 쓴 요리를 내놓았다.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밝혀진 바로는 잇몸이 영 좋지 않다고 한다. 어금니가 빠져서 앞니로만 씹는다고 하고, 부실한 잇몸 때문에 임플란트도 못하고 있다고... 고기가 너무 먹고 싶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된 증상의 후유증.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를 타는 것으로 보인다.(벤틀리 타는걸로 구라철에서 나옴)

2017년 2월부터 대중문화를 이끄는 힘을 가진 아티스트들이 독자적으로 참신한 공연을 기획/제안하는 새로운 시도, 컬처 규레이션-(현대카드 UNDERSTAGE) 김태원Curated를 진행하고 있다. 한 시대를 함께 해 온 문화의 동반자이자 음악을 듣는 이로, 노래를 하는 이로 어우러질 수 있었던 그 시간들에 매 순간 감동한다. 음악이라는 위대한 선물을 통해 같은 시대의 감성과 추억을 나누고 공감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앞으로도 영원히'라는 공연 소개글이 올라와 있다.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이 문서를 읽는 컨텐츠가 업로드되었다. 살펴본 부분은 프로필부터 3번 문단까지. 영상에서 문서의 잘못 서술되어 있었던 부분을 언급하기도 했다. PC 영상 화질처리 오류로 인해 재업로드되었다. 사실 이 문서에 있는 것들 대부분 본인이 직접 방송에서 한 말을 적은 것에 불과하지만 예능이라 과장한 것도 있으니 매체에 너무 속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학창시절 서대문의 통이었다고 한다.라디오스타 방영분을 보면 동갑내기 김국진이 먼저 증언하는 걸 보면 사실 인듯하다. 그 당시 별명은 서대문의 고릴라.

본인 말로 영어 이름은 말콤 맥도웰이라고 한다. 남자의 자격에서 영어 관련이면 항상 들먹이던 이름. 참고로 시계 태엽 오렌지 주인공 이름이다.

국민가수 심사위원으로 참가해 "손진욱" 에게 미래에서 만나고 싶다고 하였다.

노래를 만들때 작사를 먼저한다고 한다. 노래한곡을 만드는 것은 산을 깍아 연필 한개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라고 하면서 창작의 고통을 비유적으로 이야기 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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