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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김을동 프로필 나이 고향 학력 이력 배우 활동 가족관계

정치인 김을동 프로필 나이 고향 학력 이력 배우 활동 가족관계

 

김을동 프로필
김을동 프로필

 

김을동

金乙東 | Kim Eul-dong

 

출생

1945년 9월 5일 (77세)

경기도 경성부 종로구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국적

대한민국

 

본관

장동 김씨

 

 

가족

조부 김좌진, 조모 오숙근

아버지 김두한, 어머니 이재희

시아버지 송인석, 남편 송정웅

아들 송일국, 딸 송송이

손주 송대한, 송민국, 송만세

 

학력

서울재동초등학교 (졸업)

풍문여자중학교 (졸업)

풍문여자고등학교 (졸업)

중앙대학교 (정치학 / 중퇴)

 

종교

불교

 

약력

제4대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제18대 국회의원(비례대표)

제19대 국회의원(서울 송파구 병)

새누리당 최고위원

윤석열 국민캠프 여성특보단장

 


대한민국의 정치인 가문의 정치인.

 

 

김을동 어린 시절

1945년 9월 5일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사실상 '해방둥이'라 할 수 있으며, 동년배 배우들로는 박인환, 선우용여, 조경환, 김기현 등이다.

서울재동국민학교와 풍문여자중학교, 풍문여자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어렸을 때의 삶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바로 정치깡패 출신으로 재선(제3대 국회, 제6대 국회) 국회의원을 지낸 김두한이다.

1963년에 풍문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정치학과에 입학하였으나 이듬해 중퇴하였다.

선조의 후광으로 국회에 입성한 인물이다. 그래서 세습 귀족이라는 비판이 있기도 했다.

 

김을동 프로필 사진김을동 선거포스터

 

김을동 배우 시절

대학교를 중퇴한 뒤 당시 TBC에서 진행하던 성우 시험을 봤는데, 거기에서 자신을 따라 갔다가 같이 시험을 본 송도순은 합격하고 정작 자기는 떨어졌다. 이후 1967년 DBS 3기 성우로 합격하였으며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인해 KBS 9기로 분류되었다.

성우 외에도 여러 드라마와 영화의 배우로 활동하였는데 1992년 당시 KBS 2TV 드라마 적색지대에 수녀원 원장 역으로 출연할 당시의 인터뷰를 보면, "간호사를 빼고 다 맡아 본 것 같다."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역할에 나왔다. 드라마에서는 거의 상궁 역으로도 많이 나왔다.

다만, 아버지와 관련된 드라마였던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제작진이 김두한의 친할머니 역을 제안했지만 본인이 거절했고, 당시 연기자 생활을 하던 아들 송일국도 야인시대 제작진이 청년 김두한으로 캐스팅하려 했으나 김을동의 거센 반대로 무산되었으며, 결국 청년 김두한 역할은 안재모에게 갔다고 한다. 당시, 장년 김두한 역을 맡았던 김영철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 이야기인데 어떻게 냉정하게 연기할 수 있을까 싶어서, 그냥 시청자로 있기로 했지. 아버지에 대한 자료나 고증은 도와줄 생각이야."라고 밝혔다.

 

 

참고로 자녀들과는 같은 드라마에 출연한 적이 더러 있었다. 아들 송일국은 2002년 KBS 2TV 드라마 '장희빈'에서, 딸인 송송이는 1992년 SBS 드라마 '모닥불에 바친다'에 같이 출연하였다.

그러다가 2008년을 끝으로 상술하듯이 배우 활동을 사실상 은퇴했는데 이는 후술할 정치인 활동, 특히 국회의원 활동으로 인해서 그만 둔 것으로 추측된다.

참고로 그녀가 배우 활동을 할 무렵에 여러 후배 연기자들을 지도하기도 했는데, 유동근, 전광렬, 박상원, 전인화 등의 연기파 배우들의 스승으로 유명하다. 유동근-전인화 부부를 이어 준 장본인도 김을동이었다.

 

김을동 리즈김을동 배우 활동
김을동 한복김을동 인터뷰

 

김을동 정치인 활동

2008년 이전

사실 배우 생활을 하면서도 틈틈히 정치에 도전하기도 했는데, 사실 그녀의 아버지인 김두한이 소싯적에 자유당인 시절도 있다지만, 본격적으로 제도권에서 활동하면서 사사오입 개헌 반대도 하고 진보당과 신민당에 입당하기도 한 데다가 국회 오물 투척 사건까지 일으키기까지 하는 등 쭉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 이승만과 박정희에게 저항했던 이력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그 국회의원 선거활동 때문에 돈을 많이 까먹어서 김을동 본인이 그때 고생하면서 살았다고 얘기할 정도였으며, 김두한이 죽었을때 눈물 한방울도 나지 않았다고 했을 정도로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을 정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먼 미래에 아버지의 인기를 바탕으로 입문하여 최종적으로 국회의원 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991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꼬마민주당에 입당해 서울시의원 동대문갑 2구에 출마했다. 김을동이 이전부터 배우로 잘 알려진 인물인데다가 당시 장군의 아들이 대히트를 쳤기 때문에 후광효과가 기대되었지만, 막상 선거전에 들어가니 저조한 투표율과 야권 단일화 실패로 인해서 결국 선거에서 근소한 표 차이로 낙선했다. 이후로도 민주당 당원으로 재직하다 1995년 지방선거 때 동대문구 제3선거구에서 당선됨으로써 의정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듬해 민주당이 새정치국민회의와 통합민주당으로 분열 사태가 일어나자 민주당을 탈당하고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면서 정치 노선을 바꿨고 15대 총선 때 과거 아버지가 출마해 당선했던 서울 종로구에 출마했지만, 하필 선거에 나선 상대 후보들이 노무현, 이명박, 이종찬이라서 4위로 낙선했다. 이후 1998년 재보궐선거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노무현 후보 유세에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위원장 자격으로 나섰는데, 이는 DJP연합으로 새정치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이 후보 단일화를 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후 2000년 16대 총선에서는 지역구를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로 옮겨서 출마했지만, 새천년민주당 이윤수에게 패해 낙선했고,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자민련을 탈당하고 한나라당에 입당해 같은 선거구에 나섰지만, 이번엔 열린우리당 김태년에게 밀려 낙선했다.

 

김을동 정치활동김을동 국회의원 시절

 

2008년~2016년

2008년에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친박연대에 입당, 친박연대의 비례대표로 공천을 받아 18대 총선에서 당선되면서 대한민국 최초의 부녀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후 친박연대가 한나라당에 통합되면서 한나라당에 자연히 재입당했고, 새누리당에서 활동하면서 최고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다른 김좌진 장군의 후손들(예로 이복남매)과도 정치적인 이념에서 대립을 보였다. 국정화 문제도 찬성을 하는 쪽으로 나섰으며, 친박연대로서 박근혜를 지지하고 있는 쪽이기도 했다.

2012년 6월부터 2014년 8월까지 한국여자야구연맹 회장을 역임했다가 현직 국회의원의 체육단체장 겸직 금지 권고에 따라 사임했다.

19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 소속으로 서울 송파구 병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최초의 '부녀 재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다만, 19대 국회의 행보를 보면 비박계에서도 '을동 장군' 같은 칭호로 불리고 있을 정도로 비박계 인사로 성향을 바꾸었다. 20대 총선의 공천을 두고, 친박계보다 당시 당 대표였던 김무성 편을 들어주었다. 이 때부터 비박계 중 친무계로 분류된다. 김무성 전 대표는 김을동 의원이 없었다면 옥새투쟁을 포기했을 것이라며 자신을 지원해 준 김을동 의원에게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20대 총선 당시 지역구인 송파구 병에 출마 했지만,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이후 새누리당 8.9 전당대회에 참석했다.

 

 

2016년 이후

2016년 말에 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에 김무성과 같이 2016년 말에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바른정당에 합류했고 19대 대선에서 유승민을 지원했다.

2017년 6월 바른정당 당원대표자회의 부의장으로 박승호 경북도당공동위원장과 선임되었다가 11월 2차 바른정당 탈당사태 때 탈당하고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

다만, 지역구였던 송파구 병은 문종탁 변호사가 당협위원장으로 있는 터라 별다른 직함 없이 지내다가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오랜만에 정치권 활동을 하면서 미래통합당 후보들의 지원 유세에 나섰는데, 4월 9일에는 자신의 아버지의 지역구이자 고향인 종로구에 출마한 황교안 대표의 지원 유세에 윤봉길 의사의 손녀인 윤주경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후보(현 국민의힘 비례대표 의원)와 함께 나섰다.

친이계와 우호적인 관계인 친무의 핵심 인물들 중 하나라서 그런지, 2022년 1월 24일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 석방을 촉구하기 위한 전직 국회의원들의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다.

 

김을동 사진김을동 가족사진

 

김을동 가족 관계

그녀의 집안은 신 안동 김씨로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에서 순절한 문충공 김상용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홍범도, 최진동 등과 함께 청산리대첩을 이끈 독립운동가 김좌진(金佐鎭) 장군이며, 아버지는 상술했던 김두한 前 의원이다.

송인석(宋仁石)의 아들인 송정웅(宋政雄)과 결혼해 슬하에 아들 송일국, 딸 송송이를 두었는데, 둘 다 어머니처럼 배우의 길을 갔다. 다만, 오빠보다 먼저 데뷔했던 송송이는 결혼 이후에 완전히 활동을 접었다. 그리고 송일국의 아들이 바로 그 유명한 삼둥이로서 손자들 이름을 할머니가 지었다는 얘기도 있다.

 

 

도올과 위연홍의 김좌진 손녀 시비 사건

김좌진 장군의 조선족 부인이라고 주장하는 김강석의 딸인 위연홍이라는 인물이 김을동은 김좌진 장군의 손녀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면서 김을동이 자신의 유전자 감식 제의를 거부했다는 썰이 퍼졌다.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김을동은 DNA 검사를 거부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자신이 머리카락 하나만 뽑으면 모든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하였다. 중앙일보의 보도 이후 논란을 일으킨 위연홍은 잠적했으며, 1990년 신동아에 김을동이 김좌진 손녀가 아니라고 기고했던 도올 김용옥 측은 중앙일보 측의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실제로 위연홍은 보훈처에서 김좌진 장군의 후손임을 인정받지 못하고 중국으로 귀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잘못 알려진 사실 및 음모론자들의 착각

위연홍은 자기가 김좌진 장군의 후손이라고 주장하였지, 김을동이 김좌진 장군의 후손이 아니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즉, 위연홍이 김을동이 DNA검사를 피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을 김두한의 출신에 대한 의문의 증거로 받아들인 나머지 내용이 왜곡되어 전해진 것이다. 물론 김을동이 위연홍의 DNA 검사를 피한다는 게 사실이면, 김을동과 그의 아버지 김두한의 출생이 뭔가 의문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추론은 가능할 수는 있지만, 위연홍 자신이 직접 김을동은 김좌진 후손이 아니라고 말한 적은 없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위연홍은 대대로 중국에서 살아왔고, 한국에 온 지도 얼마 안 된 사람이다. 만약 그 사람이 진짜 김좌진 장군의 후손이라 해도 김을동이 진짜 후손인지 아닌지 여부는 위연홍이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애당초 위연홍은 김을동이 김좌진 후손이 아니라고 말한 적도 없다. 즉, 음모론자들이 김두한 및 김을동의 출생에 대한 의문을 파고 들다보니 위연홍의 주장을 확대 해석한 것이다.

 

김좌진은 생전 여러 명의 부인을 두었었고, 김두한 말고도 자손이 많다.

그들이 같은 대한민국에서 살아서 방해되는 게 없다. 위연홍이 실제로 김좌진의 후손이라고 한들 후손이 한 명 더 늘어나는 것 뿐인데 김을동이 손해 볼 것도 없다. 유전자 검사를 해달라고 하면, 바쁘다고 피하고 다른 김좌진 연락처를 찾아 주면 되는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위연홍이 굳이 김을동과 유전자 검사할 이유가 없다. 선택지는 많다. 그러니 김을동이 아무리 권력이 있다 해도 그걸 이용해서 위연홍을 몰아낼 이유는 없다.

 

사실 김을동이 권력도 없던 시절이다.

그리고 위연홍이 한국에 막 왔을 당시, 김을동은 국회의원이 아니었고, 송일국은 톱탤런트가 아니었다. 뭘 어찌할 권력도 없었다. 김을동이 정치지망생으로 선거마다 낙선하던 시절이고, 송일국은 무명배우이고, 판사 부인은 아직 만난 적도 없던 시절이다.

 

김을동 논란김을동 김좌진 장군

 

김을동 여담 일화

집안의 영향으로 독립운동이나 국방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물론 실제 국회의원 활동은 본인 경력 때문에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지만, 18대 국회에서는 '독도영토수호대책특별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였고, 대표나 공동 발의한 법안에서도 국가유공자 예우나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 등 독립운동이나 국방과 관련된 법안들이 다수 있다.

1998년부터 할아버지인 김좌진 장군의 기념사업회를 만들어 상당 기간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특히 매년 10월 25일 할아버지의 고향인 홍성군 갈산면 김좌진 장군 생가지에서 진행하는 전승기념 추모제에 참석했다. 2020년부터는 이사장에서 물러나 상임이사에 있다. 최근(2021년 10월 25일) 추모제에서도 참석했는데, 거동이 불편한 지 주변 사람들의 부축을 받고 왔었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국회의원 시절에 드라마 야인시대를 언급하면서 김을동의 외모가 부친인 김두한을 쏙 빼닮았다고 언급했다.

1997년 만화 관련 논란 및 만화가 불구속 기소 등으로 만화계 반발이 거셀때, 검열 및 단속을 옹호하며 만화계로부터 비난을 많이 받았다. 논리가 늘 그렇듯이 아이들이 만화보면 타락한다 꼰대같은 소리나 하여 논쟁하던 손상익에게 그런 논리라면 술과 담배야말로 제조를 중단하고 제조사를 구속해야 하는 거 아니냐? 영화도 조금이라도 아이들이 폭력적이다 선정적이다 죄다 금지하자고 하던 논리라고 맞받아쳤다.

 

 

김을동 작품 활동

영화

가슴깊이 화끈하게(1981년)

영자의 전성시대 2 / 나는 할렐루야 아줌마였다(1982년)

춤추는 달팽이(1983년)

불새의 늪 / 저 하늘에도 슬픔이(1984년)

87 영자의 전성시대(1987년)

그 마지막 겨울(1988년)

모래성 / 못 먹어도 고 / 발바리의 추억(1989년)

가보면 알 거야 - 영구와 땡분이 : 오 마담 역 / 영심이 : 어머니 역(1990년)

사랑은 지금부터 시작이야 : 교장 선생 역 / 독재소공화국 / 별이 빛나는 밤에 : 여 사감 역(1991년)

미란다(1995년)

내츄럴 시티 : 공방 역(2003년)

진짜사나이 / 마파도 시즌 1 : 여수댁 역(2005년)

카리스마 탈출기 : 민주 모 역(2006년)

마파도 시즌 2 : 여수댁 역(2007년)

 

드라마

야! 곰례야(1979~1980년)

천과 지(1981년)

새벽 / 해돋는 언덕(1985년)

임이여 임일레라(1986~1987년)

이화에 월백하고(1986~1987년)

사로잡힌 영혼 /풍객(1988년)

역사는 흐른다(1989년)

재미있는 세상(1990년)

기다리는 빛(1991년)

춘보뎐(1991년)

말로만 중산층(1991년)

모닥불에 바친다(1992년)

적색지대(1992~1993년)

남자는 외로워(1994년)

오래된 집(1995년)

서궁(1995년)

모래시계(1995년) : 박태수(최민수 분) 후배의 어머니 역

젊은이의 양지(1995년) : 배동팔(최주봉 분)의 부인 역

용의 눈물(1996~1998년)

성장느낌 18세(1996~1997년)

전설의 고향

OK목장(1997년)

파도(1999년) : 태경 어머니 역

베스트극장 - 사랑에 대한 예의(2000년) : 원장 역

장희빈(2002~2003년)

성장드라마 반올림 3(2006~2007년)

김치 치즈 스마일 : 김을동 역

며느리 전성시대 : 오향심 역(2007~2008년)

 

 

김을동 선거 이력

1995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의회 동대문 3

24,102 (65.33%) 당선 (1위)

초선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종로

6,602 (6.72%) 낙선 (4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성남 수정

19,018 (20.95%) 낙선 (3위)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성남 수정

32,665 (30.23%) 낙선 (2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2,258,750 (13.18%) 당선 (5번)

초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송파 병

59,664 (51.38%) 당선 (1위)

재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송파 병

50,212 (39.66%) 낙선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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